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사업이 ‘제2 대장동’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5년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무리한 용도지역 변경 승인에 더불어 그의 측근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대장동 사업처럼 특정 민간인이 수십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사업이 설계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인물로 지목받는 김인섭 전 이재명 캠프 선대위원장은 과거 로비(알선수재) 혐의로 실형을 받은 인물인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특검을 통해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野 “백현동 2062% 수익률, 특혜 종합판”
21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실과 김경율 회계사 등에 따르면, 성남시 백현동 사업은 2020~2021년 투자 지분 대비 배당 수익률이 최고 206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2015년 4월 성남시 도시주택국은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도시관리계획 변경 검토 보고’라는 제목의 서류를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보고했다. 이는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11만2860㎡를 ‘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보고서에는 ‘현재 용도지역은 개발이 불리한 자연녹지 지역으로 돼 있어 부지매각 입찰이 8차례 유찰되는 등 매각에 어려움이 있어 용도지역 등을 변경하고, 그곳에 공동 임대주택과 연구개발(R&D)센터를 조성하겠다’고 적혀 있다. 이 보고서의 표지 우측 상단에는 이 후보의 서명이 있다.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정진상 당시 정책비서관의 서명도 있다.
성남시는 다섯 달 뒤인 그해 9월 7일 ‘성남시 도시관리계획(용도지역 등) 결정고시’를 통해 보고서 내용대로 용도 변경을 실행했다. 당시 성남시는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를 ‘녹지지역’에서 공동주택 신축이 가능한 ‘준주거지역’으로 한 번에 4단계 높여 줬다. 건설업계에서는 “녹지지역에서 1·2·3종 일반주거지역보다 아파트를 높게 지을 수 있는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높여 준 것은 사실상 특혜”라고 지적한다.
용도변경 특혜에 이어 임대주택 건설 비율을 10%로 낮춰 주는 또 다른 특혜도 주어졌다. 100% 임대주택 공급을 전제로 용도 변경을 해줬던 성남시는 이듬해인 2016년 12월 일반 분양(임대주택 10% 포함)으로 계획을 바꿨다.
이후 시행사인 성남알앤디PFV가 1223가구를 분양했다. 분양대금은 1조264억원이었고, 성남알앤디PFV 대주주인 아시아디벨로퍼는 3000여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이미 산을 깎아 아파트 부지를 무리하게 조성하고 주변 옹벽 높이가 최대 50m, 길이가 최대 300m까지 확대되면서 백현동 아파트는 이른바 ‘옹벽 아파트’로 불리는 등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 상태다. ‘아파트 비탈면의 수직 높이는 15m 이하여야 한다’는 산지관리법 시행 규칙을 어긴 탓이다.
박수영 의원실 관계자는 “당초 용도지역 용도 4단계 상향 명분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이었으나 실제로는 분양아파트가 90%, 임대아파트가 10%로 실현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1223가구가 100% 분양에 성공했다”며 “예상 분양매출은 약 1조500억원이었으며 2020년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612%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백현동 아파트 개발은 4단계 일괄 상향, 50m 옹벽, 임대 아파트 90% 감축 등 민간 사업자에게 세 가지 인허가를 몰아준 특혜 종합판”이라고 지적했다.
◇‘대장동과 비슷한 사업 설계’ 의혹 제기
아울러 백현동 사업에 대해 업계에서는 여러모로 대장동 사업과 설계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현동 사업에 투자한 부동산업체 대표 정모씨 부부는 성남알앤디PFV 지분의 상당 부분을 갖고 있다. 정씨가 대주주인 부동산업체는 성남시가 녹지인 백현동 부지를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 용도 변경을 결정하기 8개월 전, 이 후보의 옛 측근 김인섭씨를 영입한 곳이기도 하다. 성남알앤디PFV 우선주(25만주)는 부국증권이 80.08%, NH투자증권이 19.92%를 보유하고 있고, 보통주(75만주)의 경우 아시아디벨로퍼가 61.33%, 부국증권이 19.97%, NH투자증권이 18.69%를 보유 중이다. 백현동 사업의 분양 수익은 성남알앤디PFV를 통해 분배되는 구조다.
성남알앤디PFV 보통주 지분의 61.33%를 가진 아시아디벨로퍼는 정씨가 지분 약 52%를 갖고 대표로 있는 회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NH투자증권이 보유한 성남알앤디PFV의 우선주·보통주 역시 정씨 아내인 윤씨가 NH투자증권에 신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가 그 지분의 실소유주라는 얘기다. 정씨의 아시아디벨로퍼와 부인 윤씨가 가진 지분을 합치면 이 부부가 보유한 성남알앤디PFV 지분은 전체의 약 65%에 해당한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 2015년 성남알앤디PFV 우선주와 보통주 지분을 액면가(5000원)로 확보했는데 취득 금액은 총 9억50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남편인 정씨가 아시아디벨로퍼를 통해 23억원을 성남알앤디PFV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윤씨는 작년부터 올해 말까지 총 205억4620만원, 같은 기간 남편인 정씨는 아시아디벨로퍼를 통해 총 497억4344만원을 배당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경율 회계사는 “32억5000만원을 투자해 올해 말까지 702억9000만원을 배당받는 셈인데 이는 투자 지분 대비 배당 수익률이 약 2000%를 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심 인물 김인섭씨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선고 받기도
김인섭씨가 2015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로 영입된 후 성남시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씨가 그 업체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용도 변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성남시가 백현동의 용도변경 허가를 내준 시점이 김씨가 해당사업으로 3000여억원을 챙긴 아시아디펠로퍼에 영입된 뒤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그가 이 후보가 성남시장이던 2014년 성남시와 군포시를 상대로 로비를 하고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확정받았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2015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수원지법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앞서 김씨는 2006년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2009년에는 민주당 분당갑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김씨는 이 지사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 변호사를 하던 시절부터 사무장을 맡아 오랜 기간 이 지사의 곁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다만, 이재명 캠프 측은 김씨가 2006년 당시 이재명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건 맞지만, 이후 이 지사와는 멀어졌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이 후보의 성남시장 재임 중 대장동이나 백현동 개발처럼 인허가 특혜를 통해 민간에 큰 이익을 몰아주는 사업이 많았는지 특검을 통해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與 “박근혜 정부 때 일”...洪 “11~12월 중 대책 마련”
21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 국감에서도 백현동 논란이 나왔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장동 문제에 이어 성남 백현동 땅 문제도 불거지는데 이도 대장동과 같은 구조”라며 “박근혜 정권 당시 공공기관 이전 촉진을 명분으로 용도변경을 통해 민간에 매각하라는 지시사항에 따라 절차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이 사업에 투자한 부동산업체 대표 부부는 700억원의 배당수익을 가져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의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부동산·토지 개발을 통한 불로소득을 가져가도록 방치하거나 앞장서고 있는데 국민들의 억장이 얼마나 무너지겠나”면서 “민간개발사업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하는 사업만큼은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택 토지 개발을 통한 과도한 초과이익과 불로소득을 철저하게 예방하고 차단해야 한다”면서 “11~12월 중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