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에는 대권을 코 앞에 둔 수양대군(이정재 분)이 역술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용포를 걸치고 흥이 오른 수양대군은 “명의 동쪽 나라를 지배할 분이 틀림없습니다. 왕이시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인도하시옵소서”라는 아부에는 만족해 껄껄 웃고, “역모가 아니고서는 결코 왕위에 오를 수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인다. 이어 주인공인 김내경(송강호 분)에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묻고는 “빨리 결정해야 되지 않겠나. 이미 왕이 되어버린 다음에는 너무 늦을테니 말일세”라고 한다.

내년 3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선 정국’에서 최근 들어 ‘주역 64괘’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최근 대선 이슈로 급부상한 경기도 성남 대창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와 그 자회사 천화동인 1~7호의 사명이 주역 64괘의 일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많은 역술인들이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는 뜻이고, 천화동인(天火同人)은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운’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일부 역술인들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을 소위 ‘왕이 될 점괘’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회사를 세워 대장동 개발 사업을 참여한 전직 법조기자 A씨가 동양철학과 출신이라 이런 작명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일 화천대유와 관련된 정계 및 법조계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이 새로 드러나면서, 사회지도층에서 ‘역술’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화천대유에서는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이 고문으로 활동했고,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이 자문 변호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특검의 딸,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도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다.

황교익TV 캡쳐

이 때문에 대장동 개발 사업이 추진될 당시 성남시장에 재직 중이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사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교익TV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지사는 지난 7월 11일 황교익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지금 사주를 보면 진짜 잘 나온다. 지금 대선 후보 중에서 제일”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자신이 좋은 사주를 갖게 된 이유로 “어릴 때 어머니가 내 생일이 며칠인지 잊어서 점쟁이에게 생일을 확인하러 갔다고 한다”면서 “점쟁이가 생일을 가르쳐 줬는데, 좋은 날로 골라주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모친이 아홉 남매 중 일곱째인 이 지사의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더 좋은 사주를 갖게 됐다는 것. 유년기 고생과 대선 주자에 오른 현 시점을 잘 버무린 농담이지만, 역술에 귀가 솔깃해지는 일반인들에게는 ‘대세론’의 근거도 될 수 있는 이야기다.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한 회사 사명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모두 정치인 입장에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괘다. 이 때문에 이 지사의 정치적 경쟁자들 사이에서는 두 회사의 이름과 이재명 지사의 사주와의 연관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단, 이 지사는 “내가 단 한 톨의 먼지나 단 1원의 부정부패라도 있었더라면 저는 가루가 되었을 것”이라며 대장동 관련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운세는 어떨까. 윤 전 총장은 지난달 17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찬 회동을 하면서 한 역술인을 함께 만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역을 비롯 천문·지리·인사 등 명리학(命理學) 전반에 조예가 깊어 여의도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노병한 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이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부터)이 17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이날 회동은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이 주선했다. 이날 회동에 역술인 노병한 소장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주간조선에 따르면, 노 소장은 윤 전 총장의 사주에 대해 “늦게 터지는 사주”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원래 정치할 사주는 아니었는데, 부인(김건희 씨)을 만나서 정치하는 사주로 바뀌었다”며 “사주에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약점을 커버하는 것이 부인”이라고 했다. 그는 윤 전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 “첫 통화 때 ‘저 윤석열입니다. 박사님 말씀 많이 들었는데 여러 가지 조언 좀 구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며 “그전에 통화도 하고 문자메시지도 서로 오고 갔다”고 했다.

지난 3월 월간중앙에 따르면, 영화 ‘관상’의 자문을 맡았던 조규문 점&예언 대표는 윤 전 총장의 관상을 삼국지의 장비에 비유했다. 그는 “장비는 용장에 해당하나, 윤 전 총장은 머리도 좋다”며 “지장과 용장을 합친 사람이다. 의리 있고 원칙적이고 용기가 있다. 거기에 더해 지혜롭기까지 하다. 검찰총장으로 끝날 사람이 아니다. 주변에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과 야권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평은 갈린다. 노병한 소장은 “상으로 보면 ‘스라소니’ 같은 상으로 싸움꾼”이라며 “사람 모으는 기술은 있을지 몰라도 대권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월간중앙에 따르면,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한국역리학회 중앙회장은 홍 의원에 대해 “야권에서는 가장 으뜸인 상”이라고 했다. “초년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공부를 참 잘했다. 현재 운은 상당히 좋고, 말년의 운도 좋다”고도 했다. 다만 “눈썹을 손대서 좀 걱정스럽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의 감수자로 유명한 신기원 신기원관상연구소장은 “눈의 기세가 좋다. 위엄이 있고 강력한 기운을 타고났다. 대권에 도전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눈썹도 높은 편이고 이마가 참 좋다. 초년 운이 좋아 일찍이 출세한 사람이다. 관골도 부족하지 않다. 나름대로 기세를 탄 사람”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16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자 1차 방송토론회에서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