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소상공인 손실보상금을 포함해 최대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3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 경제분야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체 360여개의 질문 가운데 28개를 받는데 그쳤다. 경제부총리는 정부조직법상 경제정책에 관해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 조정함에도 대정부질문 경제분야에서 '엑스트라(연극이나 영화의 단역)'에 그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약 5시간쯤 진행된 대정부질문 동안 5차례 불려 나와 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홍 부총리가 마이크를 잡은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전체 대정부 질의 시간 중 10% 정도 분량만 채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경태·신정훈·오기형 의원과 민주당에서 제명된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홍 부총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추경 편성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누구도 홍 부총리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추경 등 경제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는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경제·재정정책을 수립해 총괄·조정하는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기재부의 수장임에도 외면받았다.

여권으로부터 홍 부총리가 받은 질문들도 추경이나 국가재정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장경태 의원은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명예퇴직', '금융권 노조추천이사제 진행 상황'을 물었고 신정훈 의원은 '지역별 차등 법인세율 도입에 대한 의견', '탄소중립 전략'에 대해 질문했다. 오기형 의원은 '소득 주도 성장정책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한 대책' 등을 물었고, 이후 홍 부총리를 다시 불러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 유보', '가계부채 관리' 등에 대해 질문했다. 양정숙 의원은 '금리 인상이 미칠 경제적 충격에 대한 대책', '청년 지원 정책' 등에 대해 질문했다.

정부의 세입·세출, 추경과 관련한 질문은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쏟아졌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초과 세수가 35조원 정도 된다고 했는데, 정부는 이 돈으로 재난지원금 등 2차 추경안을 편성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안다"며 "세수가 걷혔으면 국가 재정법에 미루어 보아도 돈 풀 궁리만 할 게 아니라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채를 상환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점을 들며 "정부는 돈을 풀겠다 하는데 엇박자 아니냐"고도 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관련한 질문도 김 총리에게 쏟아졌다. 이주환 의원은 "총리는 정부는 빚도 갚고 손실도 충분히 지원하겠다고 말 한다"며 "초과 세수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고 빚을 갚으면서 충분히 지원하겠다는 것 같은데, 손실 보상법 소급적용은 왜 외면하냐"고 물었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도 "소상공인 피해지원에 대해 야당은 여전히 소급적용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 피해를 소급하는 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있냐"고 했다.

국회에서는 재난지원금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당의 압박에 밀려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소리를 듣는 홍 부총리가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에서도 소외를 받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홍 부총리의 리더십이 한계를 맞았다는 반응도 있다.

부동산 정책을 포함해 실패한 경제정책의 총 책임자인 경제부총리가 교체되지 않고 '최장수 기재부 장관'이 됐지만, 국회에서의 경제정책 질의는 지난 5월 임명된 김부겸 국무총리에 집중된 것이다. 홍 부총리는 국회 본회의장 국무위원 좌석에서 김 총리와 의원들의 질의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별 할일이 없었다.

각 당은 대정부질문 준비를 위해 참가하는 의원들이 사전에 수 차례 회의를 한다. 의원 별로 겹치는 질문과 순서 질문 대상 등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홍 부총리는 이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5번 불려 나와 질문을 받는 데 그친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7일 선박 전복 사고가 일어난 강원도 춘천 의암댐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재부 장관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정책들도 여당의 요구가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만 봐도 관료라기보다 완전한 정치인"이라면서 "이젠 흔들릴 리더십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홍 부총리의 리더십과 관련한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들이 있다"며 김태년 민주당 전 원내대표의 '대한민국이 기재부의 나라냐'는 비난에 강력히 항의하지 못한 것, 대정부질문에서 강원도지사 출마 의혹을 질문 받고 즉답을 피한 점, 지난해 춘천 의암호 보트 전복 사고가 났을 때 현장을 방문해 예비비 지원을 이야기한 점 등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최근 강원도 지역 언론에서 홍 부총리가 차기 도지사 여론조사에 상위권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대변인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브리핑을 열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