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초대 당대표로 11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선출됐다. 이 대표는 원외(院外) 인사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총선에서 당선된 적이 없다. 그래서 전당대회 기간 당 중진들과 맞붙으며 ‘0선 중진’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청년으로서 공정과 당의 쇄신을 호소해 돌풍을 일으켰고, 정권교체와 변화를 바라는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당권을 거머쥐었다.
이 대표는 1985년 3월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노원구 상계동에서 자랐다. 서울과학고 13기로 입학해 재학시절 학생회장을 역임하고 조기졸업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 국비 유학생으로 진학했는데, 서울과학고 재학 당시 공립이던 학교에 정부 지원이 빈약해 컴퓨터가 좋지 않았기에 삼성전자 홍보팀에 이를 알려 컴퓨터 12대를 받아낸 이야기를 원서에 적어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2011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이 대표는 교육 봉사 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찾아와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한 뒤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이 대표는 ‘박근혜 키즈’로 불렸으나, 이후 박근혜 정부를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다만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켜 준 데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정계 입문 이후 26세의 나이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8~9번을 제안받았지만 당시 비대위원이던 김종인·이상돈 등과 함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대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고를 때도 부모님의 고향이자 당의 텃밭인 경북 고령·성주·칠곡, 대구 등지의 출마를 포기하고 험지인 서울 노원 병으로 출마했다.
20대 총선 당시 노원 병에는 지난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있었다. 선거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 대표를 등에 업으며 지원 유세를 벌였으나 결국 안 대표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다.
이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당내에서 가장 비판적인 의견을 드러냈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 이정현 당대표의 사퇴를 위한 단식 농성까지 벌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새누리당 탈당파들이 만든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19대 대선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도우며 ‘유승민계’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 대표가 속한 바른정당과 안 대표의 국민의당이 통합되며 바른미래당이 출범했고, 이 대표는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안 의원이 19대 대선에 출마하며 공석이 된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어렵사리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월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에 합류했고, 이후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합당하며 미래통합당 소속이 됐다. 21대 총선에서도 줄곧 출마해 온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구 현역 의원이던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밀려 약 9%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이 대표는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당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판하며 당내 후보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을 도왔다. 이 대표는 당시 같은 당 여명 서울시 의원과 함께 ‘청년 유세차’ 등 청년을 내세운 선거 전략을 폈고, 게임을 통해 공약을 발표하는 ‘V 서울 시리즈’를 통해 선거 승리에 이바지했다.
재보선 이튿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언한 대로 사임해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치러지게 됐고, 여러 방송프로그램에서 출마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0선의 원외 인사로 당 대표가 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지난달 8일 당 대표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했고, 지난달 14일 여론조사에서는 나 전 원내대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공정과 변화 메시지를 던지면서 당 대표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이 대표는 ‘여성·청년 할당제 폐지’, ‘공천 후보자에 대한 자격시험 도입’, ’당 대변인 및 주요 당직 공개경쟁 선발’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2030의 지지를 끌어냈다. 이 대표가 말한 ‘변화’에 대구·경북(TK) 지역 당원 등 핵심 지지층도 호응하면서 한국 정당사 초유의 30대 0선 당 대표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