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사면의 필요성을 느끼는 듯한 발언을 했고, 김부겸 국무총리는 경제 5단체장과 만나 이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접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 10일 오전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 더월을 통해 아산 클러스터 현황과 직원들의 환영인사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는 아직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 재판이 끝나지 않아 사면이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에도 과거 대통령이 기업인을 사면해준 경우가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만 내리면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면 전제조건으로 '국민 공감대' 제시…여론은 우호적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5단체가 지난 4월 청와대에 이 부회장 사면을 공식 건의하자, 청와대는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형평성, 과거의 선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들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한 걸음 더 나아간 견해를 밝혔다. 이 부회장이 수감 중이어서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대응이 어려운 것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했다. 3주전에는 이 부회장 사면 전제 조건으로 '국민 공감대'를 말했는데,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와 간담회에서 앞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부회장 사면의 다른 걸림돌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다. 앞서 이낙연 전 대표가 올해 초 국민 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친문(親文) 성향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 전 대표는 사면론을 꺼낸 것을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기류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친문 전재수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입장이 상당히 변한 게 아닌가 느꼈다"며 "이 부회장 사면에 국민 70%가 찬성하는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며, 대통령이 전적으로 결정할 문제로 말씀해 온 그런 '뉘앙스'대로 진행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윤건영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구체적 결심을 했다기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며 "충분히 고심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 프로포폴 투약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

그러나 이 부회장이 현재 다른 재판을 받고 있어 문 대통령이 사면을 해주는 게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부회장은 올 1월 '국정농단' 사건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이 확정돼 내년 7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으로 또 기소됐는데, 지난 4월 첫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불법 프로포폴 투약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4일 벌금 5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업이 커가는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이 부회장 사면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면법에 따르면 특별사면 대상은 '형을 선고받은 자'라고 규정돼 있다.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은 사면 대상이 아니므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이 부회장 사면은 정치적 고려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대통령이 기업인을 사면할 때, 다른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사면을 한 경우가 많았다. 재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행사된 22건의 사례 중 14건은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사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 부회장 사면이 다른 사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다른 재판이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제한된다는 법적 규정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