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사면의 필요성을 느끼는 듯한 발언을 했고, 김부겸 국무총리는 경제 5단체장과 만나 이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접수했다.
여권에서는 아직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 재판이 끝나지 않아 사면이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에도 과거 대통령이 기업인을 사면해준 경우가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만 내리면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면 전제조건으로 '국민 공감대' 제시…여론은 우호적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5단체가 지난 4월 청와대에 이 부회장 사면을 공식 건의하자, 청와대는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형평성, 과거의 선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들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한 걸음 더 나아간 견해를 밝혔다. 이 부회장이 수감 중이어서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대응이 어려운 것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했다. 3주전에는 이 부회장 사면 전제 조건으로 '국민 공감대'를 말했는데,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사면의 다른 걸림돌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다. 앞서 이낙연 전 대표가 올해 초 국민 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친문(親文) 성향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 전 대표는 사면론을 꺼낸 것을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기류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친문 전재수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입장이 상당히 변한 게 아닌가 느꼈다"며 "이 부회장 사면에 국민 70%가 찬성하는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며, 대통령이 전적으로 결정할 문제로 말씀해 온 그런 '뉘앙스'대로 진행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윤건영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구체적 결심을 했다기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며 "충분히 고심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 프로포폴 투약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
그러나 이 부회장이 현재 다른 재판을 받고 있어 문 대통령이 사면을 해주는 게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부회장은 올 1월 '국정농단' 사건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이 확정돼 내년 7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으로 또 기소됐는데, 지난 4월 첫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불법 프로포폴 투약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4일 벌금 5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이 부회장 사면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면법에 따르면 특별사면 대상은 '형을 선고받은 자'라고 규정돼 있다.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은 사면 대상이 아니므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이 부회장 사면은 정치적 고려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대통령이 기업인을 사면할 때, 다른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사면을 한 경우가 많았다. 재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행사된 22건의 사례 중 14건은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사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 부회장 사면이 다른 사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다른 재판이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제한된다는 법적 규정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