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21일(현지 시각) 단독회담과 소인수회담, 확대정상회담까지 6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양 정상은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한미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 구축과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라는 성과를 올렸다. 미국은 삼성과 현대차, SK, LG가 총 394억달러(약 44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성과를 냈다.
◇백신, 美 기술과 한국 생산 역량 결합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코로나19 백신 확보였다. 문 대통령이 '백신 허브'를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선진 기술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한 한미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가진 백신 개발 능력과 한국이 가진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을 결합해 백신의 생산을 더 촉진하고, 전 세계에 백신 공급을 더 빠르게 더 많이 이룰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백신 공급 범위는 한국을 넘어선 전세계이다. 다만 미국의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백신 공급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우방국을 먼저 지원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군 장병 55만명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군에 대한 백신 공급 발표에 감사하다"면서 "미국의 발표는 한미동맹의 특별한 역사를 보건 분야로까지 확장한 뜻 깊은 조치"라고 했다.
한국 기업이 화이자나 모더나 등 mRNA 방식의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게 되더라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미국에서 공수한 백신을 국군 장병에게 접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급망으로 한-미 끈끈하게 묶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현대차 등은 미국에 394억달러(약 44조원) 규모의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미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글로벌 보건, 5G 및 6G 기술과 반도체를 포함한 신흥기술, 공급망 회복력, 이주 및 개발, 우리의 인적교류에 있어서 새로운 유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통신 기술에 대해 양 정상은 "이동통신 보안과 공급업체 다양성이 중요하다"면서 오픈랜(Open-RAN) 기술을 활용해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효율적이며 개방된 5G, 6G 네트워크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반도체, 친환경 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하여, 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성명에 명기했다. 또 양 정상은 상호 투자 증대 촉진과 연구개발 협력을 통해 자동차용 레거시 반도체 칩의 글로벌 공급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해외 원전시장 협력"…중동·유럽 함께 진출할 듯
한국과 미국은 해외 원전시장 진출에도 함께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우리는 국제 원자력 안전, 핵안보, 비확산에 대한 가장 높은 기준을 보장하는 가운데,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가격경쟁력, 품질관리, 시설관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 나라도 없다"며 "원천기술·설계기술의 경우 한국도 수준이 상당하지만, 미국도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동이나 유럽 등에서는 원전 건설 수요가 있다"고 했다. 한미가 기술 협력으로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 완전 해제…中 견제 의도도
42년만의 미사일 지침 폐지는 이번 정상회담 최대 성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면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한미 방위비 협정 타결과 더불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라고 했다.
미사일지침 폐지로 '최대 800km 이내'로 설정된 사거리 제한이 완전히 풀렸다. 이론적으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가능하다. 한국은 사거리 1000~3000㎞ 중거리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사거리 1000km 탄도미사일은 제주도에서 북한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 등이 사정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거리 2000km 이상이면 중국 내륙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가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면 미국은 한반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도 중국과 러시아 견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대화·외교 통한 대북접근법 강조…北이 원하는 내용은 아냐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점을 둔 메시지를 냈다. 양국은 대화와 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거듭 강조했고, 기존 북미 및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대화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양국은 소통하며 대화·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진전하면서 긴장을 줄이기 위한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관여할 의지를 공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의 전략과 접근을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진행하겠다는 점을 문 대통령에게 약속한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한다고 말하면서 "기쁘게 발표한다"고 밝혔다.
또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양 정상의 발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대화 조건으로 제시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언급이 없고, 북한도 당분간 내부 문제에 집중하며 미국의 의중을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 함께 해"
문 대통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만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받았다. 한 달 전 스가 요시히데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며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미일 정상 공동문서에서 대만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이 담겼다. 또 "다원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는 국내외에서 인권 및 법치를 증진할 의지를 공유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대만 문제와 관련해 강한 기조를 가져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한국과 미국은 또한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협력 강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바이든 "삼성·현대·SK·LG, 감사, 감사, 감사"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투자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250억달러의 새로운 투자를 삼성, 현대, SK, LG가 할 것"이라면서 기업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여기 회장과 최고경영자(CEO)가 오셨다"면서 "잠시 일어나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기자회견장 정면 세 번째 줄에 일렬로 앉아 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6명이 일어나자, 바이든 대통령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그러면서 "감사, 감사, 감사하다(Thank you, thank you, thank you)"면서 "우리는 함께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호명돼 일어선 6명의 국내 기업인들은 최 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이다. 이들은 이날 오전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4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단독 회담을 가졌다 오찬 메뉴는 '크랩 케이크'였다. 백악관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 식성을 고려해 메뉴를 준비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스가 총리와 정상회담 때는 '햄버거'를 먹었다. 스가 총리는 회담 후 "(햄버거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대화에 열중했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하고 방미한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최근 미국 방역당국이 접종을 완료한 경우(2차 접종 후 2주 경과) 실내·외 구분 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담을 갖게 된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