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자신을 비난하는 전단을 배포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 김모(34)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사건 발생 1년10개월 만이다. 야당은 물론, 참여연대도 문 대통령에게 고소 취하를 촉구하는 등 비판이 쏟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라며 고소 가능성을 열어뒀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靑 "허위사실 유포 성찰의 계기 되길 바란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2019년 전단 배포에 의한 모욕죄에 관련해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분수대 주변에서 '민족문제인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문 대통령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혐의를 받는다. 전단에는 일본 주간지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북조선(북한)의 개 한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김씨를 고소했던 이유에 대해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한다"면서 고소를 취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앞으로 이 같은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 고소를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여지를 열어뒀다. 박 대변인은 "앞으로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어도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이라는 발언이 '만약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고소할 수 이다는 취지냐'는 질문에 "앞으로 유사한 사안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신중하게 판단해 모욕죄로 고소할 일이 있으면 다시 고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냐고 질문이 나오자, 이 관계자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며 "사안의 경중에 따라 열려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하는 초유의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참여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모욕죄 고소 취하를 촉구하면서, 최강욱 의원이 발의한 모욕죄 폐지 형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최강욱 발의한 모욕죄 폐지 법안 신속히 처리하라"

야당은 문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한 국민을 고소한 이번 사건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국민의힘 정원석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은 어떤 혹독한 비판에도 포용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대통령 그릇은 간장종지에 불과한 것을 목도했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7일 교회 지도자들과 간담회에서 "정부를 비난하거나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자유)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성일종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이 발언을 인용하고, "그래 놓고 뒤로는 자신을 비판한 한 청년을 직접 고소했다. 유치하고 민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국격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슴이 무너진다"고도 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지난 3일 당 회의에서 "배포된 내용이 어떤 것이었든, 대통령에 의한 시민 고소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독재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 된다"면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전례를 돌아보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표현은 허용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한 시민을 상대로 한 최고 권력자의 모욕죄 고소는 국민의 권력 비판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모욕죄 고소는 취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모욕죄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공직자를 비판하는 일반 시민을 처벌하는 데 악용되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모욕죄 폐지 형법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하루 속히 국회가 모욕죄 폐지에 서두를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