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까지 D-312.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여권 최대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 하기에 앞서 '집토끼' 잡기에 열중이다. 호남 유권자 표심이 당내 경선에서 후보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여권 내 지지율 1위일 뿐만 아니라, 호남에서도 1위를 지키고 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호남에 연고가 없는 이 지사가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것은 호남 유권자들에게 '호남 대망론'보다 '정권 재창출' 열망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가 본선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호남 표심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왼쪽부터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연합뉴스

◇이낙연·정세균, 호남 러브콜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공통점이 많다. 정치적 기반이 호남이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차례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정 전 총리는 전북 진안이 고향으로,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15·16·17·18대)에서 내리 4선을 했다. 전남 영광이 고향인 이 전 대표도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16·17·18·19대)에서 4선을 지냈고, 전남지사를 역임했다.

두 대선주자 행보도 비슷하다. 오는 2일 실시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 지도부가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이에 앞서 두 후보 모두 호남권을 중심으로 민심을 훑고 있다.

후발주자인 정 전 총리는 지난달 15일 총리직을 내려놓고 본격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이틀 연속 광주와 전남 지역을 찾았다. 그는 5·18 묘지 방문 후 페이스북에 "그동안 광주 호남이 피와 눈물로 쌓아 온 헌신과 희생은 이미 충분하다"며 "이제 아픔을 딛고 광주 호남의 발전을 이야기 해야 한다"며 소회를 적었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 전 대표는 전국 각지를 다니며 민심을 듣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영광을 방문해 선친 묘소를 참배했고 18일엔 전남 구례를 찾았다. 특별한 메시지는 내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오는 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자신의 지지모임 '신복지2030 광주 포럼' 출범식을 기점으로 본격 호남 맹주로서의 존재감을 되찾는다는 복안이다.

그래픽=이민경

◇영남 출신 이재명, 호남서 지지율 1위…왜?

두 대선주자가 외연 확장보다는 '집토기'부터 찾는 것은 그 집토끼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6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 광주·전라 지역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28%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이 전 대표가 15%, 정 전 총리가 6%로 뒤를 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8%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4·7 재보궐선거 직전인 지난달 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이 지사가 31%, 이 전 대표가 2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나기 전인 정 전 총리는 여론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정 전 총리가 차기 대권 주자에 공식 합류하며 사실상 이 전 대표의 지지율 일부를 흡수한 셈으로, 이 지사 지지율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영남 출신의 이 지사가 호남에서 1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호남 유권자들은 '호남 대망론' 열망 못지 않게 정권 재창출 의지가 강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가 전국적으로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사가 민주당 정권을 이어갈 유력한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통화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에서 대통령이 나온 적이 없다. 광주·전남에서는 마땅한 후보도 나온 적이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호남 대망론에 대한 열망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호남 유권자들은) 정권을 (야당에) 뺏길 수 없다는 의지도 매우 강하다"며 "이 지사의 높은 지지율은 '될 만한 사람',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의 결과"라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지사 지지율이 높은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정 전 총리가 추동력을 얻고, 이 전 대표가 반전의 모멘텀을 만든다면 이 지사의 지지율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호남은 영남보다 인구가 적고, 호남 유권자들의 한(恨)이기도 하다"며 "이에 호남 유권자는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후보를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지개 펴는 '제3후보'...3자 구도 깨질까

이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 첫 번째 국무총리였고, 정 전 총리는 친노(親盧)이면서 범친문에 속한다. 친문(親文) 지지층들이 원하는 후보가 되기에는 약간씩 부족하다.

뚜렷한 친문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제 3의 후보들도 대선 도전을 저울질 중이다. '원조 친노' 이광재(3선·강원 원주갑) 민주당 의원은 오는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2주기 전후로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사는 지난달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떤 역사적 책무가 오면 피할 생각은 없다"며 출마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PK 출신 김두관(재선·경남 양산을) 민주당 의원도 오는 6월 출마를 계획 중이다. 김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이 지사, 이 전 대표의 시간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6월 이후 추월을 자신한다"고 했다.

박용진(재선·서울 강북을) 의원과 양승조 충남지사도 출사표를 던진다. 박 의원은 오는 9일 국회에서 출마선언을 한다고 밝혔고, 양 지사는 하루 뒤인 10일 세종시 지방자치회관에서 출마 선언을 한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당대회 이후 출마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주자들이 연이어 출사표를 내면서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이 흥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표 분산을 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선 흥행이 지지세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