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생태계 육성을 위해 국가 재정을 투입할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때 수도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앞서 정부는 2023년 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경기도 용인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한 바 있다. 새로 지정될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경기도 용인보다 더 획기적인 규제 완화 등 혜택을 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 대만 역시 비(非)수도권에 반도체 집적단지를 구축한 뒤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허허벌판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한 게 아니라, 대학과 연구시설이 있어 인재 확보가 수월한 곳에 대규모 세제 지원을 해 기업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 정부,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때 수도권 배제하는 방안 검토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 근거한 것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다.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되면 전력, 용수, 도로 등 인프라 구축 때 국비가 지원되고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인허가 신속 처리 ▲국·공유재산 사용료 및 개발 부담금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산업통상부는 오는 8월 반도체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조만간 신규 클러스터 지정 요건과 지원 정책을 구체화한 특별법 시행령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시행령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요건에 '수도권 이외 지역'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특별법은 지방 신규 클러스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며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만, 대학·연구시설 있는 非수도권에 '과학산업단지' 조성... 세제 혜택 줘 기업 모이게 해
현재 대만은 북부 신주, 중부 타이중, 남부 타이난 등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 각각 수도 타이베이시에서 70km, 134km, 265km 떨어져 있다. 반도체 벨트의 중심인 신주과학산업단지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비롯해 미디어텍 등 설계기업부터 ASE 등 후공정 기업까지 900여개사가 모여있다. 단지 안에서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공정이 이뤄진다. 지난해 과학산업단지 내 기업들이 낸 매출은 총 5조8000억 대만달러(약 280조원)에 달했다.
이 반도체 벨트의 출발점은 대만 정부가 1980년대 조성한 신주과학산업단지다. 정부가 신주를 점찍은 것은 우수 이공계 인재 확보가 수월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신주에는 정부 산하 응용기술 연구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이 소재했다. TSMC가 ITRI에서 분사한 회사다. 또 신주에는 대만 3대 이공계 명문인 국립칭화대학교(NTHU)와 국립양명교통대학교(NYCU)도 있다.
정부는 신주과학산업단지에 과감한 세제 혜택을 줘 기업이 찾아오도록 했다. 입주 기업에 초기 5년간은 법인세를 아예 면제했다. 또 설비·원재료 수입 관세는 입주 기간 내내 면제해줬다. R&D 비용은 최대 50%까지 세액 공제했다. 이에 과학산업단지 조성 10년만에 105개 기업이 입주했다. 대만 정부는 신주에서 입증된 성공 방정식을 1997년 남부 타이난, 2003년 중부 타이중 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할 때도 그대로 활용했다.
대만의 사례는 단순히 생산시설을 지방으로 옮기도록 한 것이 아니라 연구기관, 대학 등 인프라가 소재한 곳에 세제 지원을 해 기업이 자연스럽게 지방을 선택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정책적 시사점을 준다. 유럽 싱크탱크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는 "과학산업단지에 첨단 기술기업이 소재한 것뿐 아니라 숙련된 노동력, R&D 활동이 한 데 어우러져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