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스1

중동 전쟁 이후 우리나라 정부가 공공 부문 차량 2부제를 시행하고 민간의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는 방식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재정 여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선 이번 위기를 견디기 위해 한층 강도 높은 에너지 절감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 최고속도를 낮추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영하는가 하면, 공공기관의 에어컨 사용을 금지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 파키스탄 "고속도로 속도 제한", 필리핀 "무료버스 운영"

19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6년 에너지 위기 정책 대응 추적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가장 많이 시행한 긴급 에너지 절약 조치 중 하나는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15일(현지 시각) 쿠웨이트 시티의 쿠웨이트 국제 박람회장에 마련된 임시 자지라 항공 예약 센터에서 승객들이 체크인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파키스탄은 승용차의 고속도로 최고 속도를 시속 120㎞에서 100㎞로 낮추고, 버스·화물차는 110㎞에서 90㎞로 하향 조정했다. 국도에서도 각각 100㎞에서 80㎞, 80㎞에서 65㎞로 속도를 낮췄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저항이 커져 연료를 더 많이 쓰게 되는 만큼, 속도 제한은 연료 절감에 도움이 된다.

리투아니아는 두 달간 지역 열차 요금을 50% 인하했고, 필리핀은 일부 도시에서 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무료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파키스탄도 한시적으로 대중교통을 무료화했다.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은 대중교통 이용 및 카풀(출근길 차량 동승)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요르단 암만에서 레바논 베이루트로 향하는 트럭 행렬이 요르단 자베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공공부문의 에너지 사용을 제한하는 국가도 있다. 요르단은 중동 사태 이후 공공기관의 에어컨 사용을 금지하고 공용 차량 운행을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공무원 출근 일수를 주 5일에서 4일 수준으로 줄였고, 근무의 절반은 재택근무로 전환하도록 했다.

교육·공공시설 운영을 줄이는 조치도 이어졌다. 방글라데시는 공립·사립대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고, 라오스는 수업 일수를 주 5일에서 3일로 줄였다. 페루는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스리랑카는 매주 수요일 학교와 대학을 휴교했다. 이집트는 행정수도 내 학교의 야간 전력 사용을 제한했다.

◇ "단기 수요 억제 넘어 절약하면 혜택 주는 제도 만들어야"

이 같은 이색적이고 강도 높은 조치는 주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재정 여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졌다.

반면 선진국은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호주는 시민들의 자발적 연료 절약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시행했고, 스페인은 주택 개보수와 태양광 설비 설치 등에 대한 소득세 감면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독려했다.

전문가는 단기적 수요 억제와 장기 인센티브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최고속도 제한이나 대중교통 무료화 같은 조치는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지속 가능성은 떨어진다"며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절약 제품을 사용하는 국민과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