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이달 평균 1490원에 근접하며 외환위기 이후 네 번째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중동 전쟁에 따른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 확산과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겹치면서 원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 대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평균 환율은 1489.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1월(1701.53원)·2월(1626.75원), 1997년 12월(1499.38원)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주간 기준으로는 환율이 한때 1,517원을 넘어서며 평균 1500원대에 진입,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을 돌파했다.
원화 약세는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두드러졌다. 이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약 4.7%로, 유로(-2.62%)·엔(-2.58%)·파운드(-1.64%) 등 주요 통화는 물론 호주달러(-3.46%), 대만달러(-2.11%), 위안화(-0.84%)보다도 낙폭이 컸다. 일부 신흥국 통화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약한 흐름이다.
배경에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자리 잡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코스피에서 약 30조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달까지 포함하면 두 달간 순매도 규모는 50조원을 넘어선다. 특히 최근 한 주 동안에만 13조원 이상을 팔아치우며 주간 기준으로도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이 같은 매도세는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지정학적 불안과 산업 우려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진 가운데, 인공지능(AI)·반도체 업종 고평가 논란과 수요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내 증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도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유가 상승이 무역수지와 물가에 부담을 주면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환율 상승을 더욱 자극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단기간에 진정되더라도 환율이 과거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유가와 인플레이션 기대, 경기 둔화 우려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원화 약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