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요즘 검찰,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 잡기'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것 같아요. 세 기관 모두 본업이 따로 있는데 이렇게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관료 출신인 로펌 고문 A씨가 지난 13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식품 기업들이 담합으로 물가를 올리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대형 담합 사건을 잇따라 기소한 검찰을 이 대통령이 칭찬하면서 국세청과 공정위도 앞다퉈 물가 관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 안팎에선 "대통령의 눈에 들기 위해 검찰과 국세청, 공정위 모두 본업이라고 보기는 힘든 '물가 단속' 총력전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밀가루-설탕' 담합 기소한 검찰에 李 대통령 이례적 칭찬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지난 2일 CJ제일제당과 삼양사의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등 11명을 설탕 담합 혐의로 기소했다. 또 밀가루 업체인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제분사 6곳과 개인 14명도 담합 혐의로 같은 날 기소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X에 올린 글에서 검찰의 밀가루-설탕 담합 수사 성과를 칭찬했다. / X 캡처.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관련 기사를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면서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검찰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건 처음이었다. 하루 뒤인 3일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검찰이 민생 사범 단속을 잘 해가지고 상당한 성과를 냈는데 정말 잘하셨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하반기부터 물가를 올리는 기업들을 제재해야 한다고 거듭 지적하고 있다. 작년 10월 국무회의에서는 "(기업들이) 고삐를 놔주면 담합하고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고 폭리를 취한다"고 했다. 또 이달 5일 국무회의에서도 "독과점 상황을 악용해서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현장의 문제는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서 반드시 시정하길 바란다"고 했다.

◇ 공정위-국세청, 앞서거니 뒷서거니 '물가 관리'에 뛰어들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임광현 국세청장.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은 칭찬했지만 흔히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달리 대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에게 이 대통령은 "(담합 행위 등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든지 아니면 일정 숫자 이상의 국민에게 고발권을 주든지 그렇게라도 (권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위만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서 물가가 뛰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밀가루와 설탕 등 가격 담합을) 소비자들이 알아도 고발을 못 한다는 건데, 왜 고발을 꼭 (공정위가 독점) 해야 하냐"고도 했다.

이후 공정위가 바빠졌다. 지난 12일 공정위는 2021~2025년 설탕 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로 CJ제일제당·대한제당·삼양사에 과징금 4083억원을 부과했다. 식품 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공정위 출범 이후 역대 최대 액수였다. 주병기 위원장은 담합 제재 결과를 직접 발표하면서 "반칙하고 착취하는 기업은 도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담합 제재를 이례적으로 빨리 발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통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조사한 뒤 내부 심의·의결기구인 전원회의에 안건으로 올린다. 이후 제재 결과를 공개하기까지 평균 7일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설탕 담합 사건은 전원회의 바로 다음 날 제재 결과를 공정위원장이 나서 공개한 것이다.

국세청도 움직였다. 지난 9일 "설 명절을 앞두고 국민 장바구니 물가 불안을 야기하는 탈세 혐의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했다. 세무조사 대상으로 대한제분, 삼양사, 샘표식품 등 식품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작년 9월부터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물가를 올린 식품 기업을 집중 조사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이 물가 관리에 중점을 두면서 검찰과 공정위와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전직 관료 B씨는 "국세청과 공정위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일 처리가 늦었다거나,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측면이 있다"면서 "이후로 대통령 지시 사항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전직 관료 C씨는 "본업으로 보면 검찰은 범죄 수사, 국세청은 세금 징수, 공정위는 불공정 거래 행위 대응일 텐데 정권마다 물가 단속에 이 기관들이 동원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일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