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준을 이야기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현을 쓴다. 스탠더드는 '표준'을 말한다. 표준은 경제, 산업, 기술을 아우르는 약속이다. 기술 발전으로 '표준'이 필요해지기도 하지만, 하나의 표준이 혁명 수준의 도약을 견인하기도 한다. 국가기술표준원과 조선비즈는 산·학·연·언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세상을 바꾼 10대 표준'과 '한국인의 삶과 경제를 바꾼 10대 표준'을 선정하고, 표준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대중교통 결제 방식의 발전은 기술 발전사를 보여준다. 동전형 토큰에서 승차권, 전자카드 방식을 거쳐 지금의 스마트 기기 내장형 교통카드 시대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에 따라 결제 방식이 달랐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는 부산에서 쓸 수 없었다. 도시마다 결제 체계가 달라 호환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파수를 비롯해 인식 방식과 정산 시스템까지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용자는 불편했고, 운영 효율도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교통·IT 업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RFID 기반 비접촉식 결제 표준을 마련했다. 국제표준 ISO/IEC 14443을 바탕으로 한 'KS X 6924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 표준이 나오면서 버스, 지하철, 택시 등 각기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서 하나의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전국 호환 교통카드'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인의 삶과 경제를 바꾼 표준, 교통카드. /국가기술표준원 제공

한 장의 카드로 전국 어디서나 이동할 수 있게 됐다. 환승 할인 덕분에 가족의 교통비 부담이 줄어들었고, 도시의 교통망은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시민을 품었다. 교통카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편의점과 자판기 등 소액 결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됐다.

성과는 매우 컸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교통카드 이용률은 2004년 30%대에서 2020년대 들어 90%를 넘었다. 환승 할인과 통합 정산 제도 도입으로 소비자가 얻는 편익은 연간 1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도시로 관련 기술이 수출되며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울러 교통 데이터의 집적을 통해 도시 교통 정책을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했다. '더 편리하고, 더 안전하며, 더 스마트한 결제'를 원하는 소비자와 사회의 요구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교통카드 산업은 훗날 한국의 스마트 결제·핀테크 산업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교통카드를 만들며 확보한 IC칩 기술, 데이터 처리, 대량 발급·운영 경험은 우리 산업에 축적됐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신용카드, 모바일 결제, 간편 송금, 그리고 오늘날의 NFC·QR 기반 결제로 이어졌다.

교통카드 표준화는 단순히 '버스·전철 요금을 쉽게 내는 문제'를 넘어, 지역 간 경계를 허물고 시민 생활을 하나로 연결한 혁신이었다. 작은 카드 한 장이 전국을 잇고, 한국 사회가 생활 속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스마트 도시로 도약할 수 있게 한 역사적 디딤돌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