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의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추기 위해 시장 안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14일 밝혔다. 환율이 지난 7월 1350원대에서 꾸준히 올라 이날 1470원을 넘자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이다. 환율이 1480원까지 돌파한다면, 작년 말 12·3 비상계엄 혹은 지난 4월 미중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서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을 때의 환율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이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와 미 달러화의 국제적 강세, 엔화 약세 동조 흐름 등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이에 정부가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추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해 달러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9시 15분 기자단에 보낸 메시지에서 "원화 약세 기대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업체들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당초 구 부총리 등의 메시지는 오전 9시 50분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환율이 전날보다 4.2원 오른 1471.9원에 출발한 뒤 계속 상승하자, 메시지를 공개하는 시간을 35분 앞당겼다. 구 부총리 등의 메시지가 공개된 직후 환율은 하락 전환해, 10원 넘게 떨어졌다. 오후 1시 14분 현재 직전 거래보다 13.5원 하락한 1457.5원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이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불리는 1480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이라고 본다. 임환열 우리은행 연구원은 "환율이 1480원을 넘으면 (원화 매도 속도가 빨라져) 1500원을 돌파할 수도 있었다"며 "1500원대 환율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두 차례에만 나타났던 만큼, (현실화할 경우)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가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에 해외 투자 자산 환(換) 헤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환 헤지는 달러 등 외국 통화 가치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쓰는 투자 기법이다. 예컨대 1달러가 1400원일 때 해외 주식에 투자할 경우 나중에 주식을 팔 때도 1달러에 1400원을 받는 계약을 미리 체결하는 식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요청하면 외화 자산의 최대 15%까지 환 헤지에 나설 수 있다.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환율이 더 올라가면 보유한 해외 자산의 일부를 선물환(특정일에 사전에 약정한 환율로 매수·매도하는 거래)을 통해 매도하는 식이다.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의 외화 자산은 지난 8월 말 기준 771조3000억원 규모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 외환 스와프(교환)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하는데, 이를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과 직거래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줄게 된다. 현재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은 650억달러 한도로 외환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