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제공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통상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쟁점이 남아 있다며 "교착 상태"라고 밝힌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타결이 매우 가깝다"고 말했다. 통상 협상에 대한 양국의 동상이몽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 협상 최종 합의문이 도출되긴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공개된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한미 통상 협상과 관련해 "주요 내용에 대한 양국 간 논의는 아직 교착 상태"라면서 "투자 방식과 금액, 시간표, 우리가 어떻게 손실을 공유하고 배당을 나눌지 이 모든 게 여전히 쟁점"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생각에 일부 차이가 있지만 (타결) 지연이 꼭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자 우방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이 제안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성과 이행 방안이 합의되지 않았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문을 도출하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이 대통령의 발언은 현재 미국이 주장하는 요구를 한국으로서는 받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과 며칠 만에 현재 교착 국면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미국도 계속 요구해 온 내용을 하루아침에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이 대통령이 통상 협상 막바지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한 '살라미식 지연 전술'을 쓰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살라미 전술은 이탈리아의 햄 살라미를 얇게 썰어 먹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큰 목표를 작은 조각으로 나눠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단계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방식으로, 북한이 북핵 협상에서 구사하던 전략이기도 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바둑에서 결판을 앞두고 팻감을 교환하는 패싸움처럼, 통상 협상 최종 국면에선 양국의 카드를 교환하며 이익을 배분하는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된 협상이라는 점에서 국익을 하나하나 찾기 위해선 긴 호흡으로 세세한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도중 전용기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한·미 통상 협상) 타결이 매우 가깝다"면서 "그들이 준비가 된다면, 나는 준비가 됐다"며 낙관적인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의 발언은 국내적으로 '협상에 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기대를 현실화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노린 트럼프 특유의 화술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도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문제(snag)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전반적인 큰 틀(프레임워크)은 완성됐고 이제 알파벳 't'에 선을 긋고, 'i'에 점을 찍는 수준의 세부 조율만 남았다"면서 "매우 복잡한 협상이지만 우리는 (협상 타결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베선트 장관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에 대해선 "아닐 것 같다(I think not quite)"고 선을 그었다.

최석영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미리 예단해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며 "이와 동시에 미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한국도 미국도 서로의 요구하는 내용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며 "첫 단추를 잘못 꿴 협상을 성급하게 타결하기보다는 최대한 잘 수습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