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생산량 확보는 농산물 수출 확대의 필요조건이다.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을 잘해도, 국내에서 충분한 양이 생산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설향으로 대표되는 국내산 딸기와 함께 배는 글로벌 시장에서 명품으로 평가받는 우리 농산물이다. 해외 바이어들이 '얼마든지 팔아줄 테니 양만 충분히 확보해달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작년 봄 이례적인 저온 현상으로 냉해 피해를 입으면서 가을철 배 수확량이 급감했다. 사과도 상황이 비슷했다. 국내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배와 사과 가격이 급등했다. '애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생산량 감소는 수출 둔화로 이어졌다.
호주 시드니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FFA 현장에서 만난 김길동 한국배수출연합주식회사 대표는 "미국의 대형 바이어가 '우리가 얼마든지 물량을 소화해줄 테니 최대한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수요가 있지만, 작년에는 작황이 좋지 않아 보낼 물량이 부족했다"면서 "올해는 그나마 작황이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 작년 배 수출,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
지난해 배 수출은 얼마나 줄었을까.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산 배 수출액은 5883만달러로, 전년(7451만달러) 대비 21% 감소했다. 작년 배 수출액은 201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출물량도 작년엔 1만6679만톤으로, 전년(2만4430만톤) 대비 31.7% 감소했다. 배 수출 물량이 2만톤을 넘지 못한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작년에는 연초 냉해를 시작으로 여름철 햇볕데임(일소)·열매터짐(열과)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국내 유통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배 가격이 급등했고, 해외 수출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배수출연합 관계자는 "가을에 수확한 배를 이듬해 초까지 수출을 하는데, 2024년에는 물량 확보가 어려워 해가 지나기 전에 수출 물량이 동이 났다"라고 말했다.
신흥개척시장인 호주 지역으로 향하는 수출 물량도 급감했다. 지난해 호주로 나간 배 수출 물량은 4만8000톤에 그쳤다. 2023년 8만2000톤을 기록했던 수출 물량이 1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 올해 배 작황 회복… 농가 출하 수요, 수출로 풀어야
그래도 다행은 올해는 배 수확량이 평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농업관측-과일, 2025년 10월호'에서 올해 배 생산량은 20만3000톤으로 전년 대비 13.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 재배면적은 9361헥타르(㏊, 1㏊=1만㎡)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지만, 단수는 10아르(a, 1a=100㎡) 당 2166㎏으로 전년 대비 14.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평년과 비교해도 올해 배 생산량은 6.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올해도 작년처럼 봄철 저온 피해로 '비정형과', 이른바 못난이 배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농경원 관계자는 "7월부터 지속된 폭염으로 일부 농가에서 열과와 일소(햇볕 데임) 피해가 발생했다"라면서 "크기와 모양은 전년 대비 부진하지만, 당도는 양호하다"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달 신고배 시장 반입량은 전년 대비 14.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급이 증가하면서 배 가격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신고배 도매가격(가락시장 기준)은 15㎏ 당 4만원으로 전년(5만900원) 대비 21.4% 하락했다.
다만 올해 배는 저장성이 평소보다 떨어질 전망이다. '가을 장마'로 수확기에 비가 자주 내리면서 과피얼룩 등 품질 저하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경원 관계자는 "폭염기에 응애와 깍지벌레가 작년보다 많이 발생했다. 복숭아순나방 등 해충 피해도 발생했다"라면서 "방제에 소홀한 농가는 유통·저장 기간에 부패과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부패과 발생을 막기 위해 배를 조기에 출하하겠다는 농가의 의향도 커지고 있다. 국내 수요가 갑자기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기 출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채널로서 수출 시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 기후 변화 대응 신품종 개발해야… 시장 다변화도 과제
현재 농가에서는 기후 변화에 맞춰 수확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으로 대응 중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주력 배 품종인 신고배의 경우, 고온장해를 예방하려면 2∼4회 나눠 수확해야 한다"라면서 "지역마다 상세 기상, 과수원 위치, 배나무 생육과 관리상태가 다르므로 9월 초부터 주기적으로 과일 성숙도를 진단해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폭염과 전염병에 강한 품종을 개량하는 게 과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급격한 기후변화(생육기 고온장해 등)로 생육이 불안정해 수출량 확보와 품질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면서 "다양한 품종을 확보하고 연중 안정적인 수출 체계를 구축해야 수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의 주력 품종인 신고 배는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기도 하다. 현재 농진청에서는 수출 주력 품종으로 '만황'을 주목하고 있다. 2006년 개발된 만황은 나주에서 10월 중하순 수확할 수 있는 만생 품종이다. 당도는 14.0브릭스(°Bx)이며 상온에서 8주, 저온저장 했을 때는 7개월 이상 품질이 유지돼 수출용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길동 대표는 "일본이 고급화 전략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지배한 것처럼, 우리 농산물도 고품질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라면서 "최근 중국산 배도 품질이 꽤 많이 올라왔다. 이를 압도할 초격차 품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 배 수출의 50% 이상이 미국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세 장벽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서 "호주를 비롯해 베트남과 대만, 유럽 등 다양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수출 판촉 활동과 현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호주의 한 수입사 관계자는 "현지 마트에서 판촉 행사를 할 때마다 '한국 배를 처음 맛 봤는데, 너무 매력적이다'는 반응이 많다"라면서 "해외 식품전 등을 통해 한국 배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인천공항 등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배 등 한국 과일에 대한 홍보 행사를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공동기획 :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