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대통령실

앞으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필요한 물품·용역이 조달청이 단가(單價)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도 나라장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컴퓨터, 노트북, 책상 등 조달청이 생산업체와 단가 계약을 체결한 물품·용역을 구매하는 경우 국가조달시스템(나라장터)을 통해 사야 한다.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의자, 책상 등 사무용품이 판매되고 있다./나라장터

3일 정부에 따르면 조달청은 이달 중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조달개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달청은 지난 7월 조달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조달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과제를 발굴해 왔다.

조달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개혁 방안은 계약물품 의무구매 폐지다. 계약물품 의무구매란 조달청이 특정 물품에 대해 생산업체와 단가 계약을 체결했다면, 부처·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이 해당 물품을 구매할 때 나라장터를 통해야 하는 제도다. 가령 조달청이 생산업체와 볼펜 하나당 500원에 단가 계약을 맺었다면 부처·공공기관은 볼펜이 필요할 때 자율적으로 살 수 없고, 나라장터를 통해서만 구매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수요기관이 생산업체와 협상하지 못하게 됐고 일부 상품은 가격이나 품질 등에서 시장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구매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이던 지난 2020년 "실제 나라장터 물품 가격 비교를 해본 결과 시장가보다 더 비싼 경우가 90개 발견됐다. 공정한 조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조달청은 앞으로 계약물품 의무구매를 없애고, 수요기관의 구매 자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동시에 조달청은 제도가 없어지면서 수요기관 공무원이 아는 업체의 물품을 비싼 가격에 사주는 등의 역효과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보완책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계약물품 의무구매 폐지를 특정 가격 이하 또는 일부 수요기관에 한정하는 등의 내용을 검토 중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기업(생산업체)에 피해가 가지 않고 수요기관이 합리적으로 구매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은 또 인공지능(AI) 관련 물품에 대해선 납품실적 요건을 폐지한다. 정부가 AI 대전환을 목표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흐름에 맞춰 조달청도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납품실적 요건이 폐지되면 AI 업체는 기존 납품실적이 없어도 조달청과 계약할 수 있게 돼 조달 시장 진출이 수월해진다.

백승보 조달청장은 7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AI 시장 형성을 위해선 정부가 위험을 부담하면서 제품을 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산업계에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AI 수요를 창출해 줄 것을 건의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 가격 검증을 회피하려는 관수(官需) 계약 단속은 강화한다. 관수란 수요기관의 요청으로 일반 제품에서 규격을 변경한 것인데, 수요기관만을 위한 제품이라 가격이 비싸다. 이를 노리고 생산업체가 일반 제품에서 나사와 같은 사소한 부품 하나를 바꿔 관수로 공급하면서 폭리를 취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조달청이 진화에 나선 것이다. 조달청은 경쟁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의 관수 규격에 대한 계약은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조달청은 또 조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규정과 지침 760개를 전수 조사해 합리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중소기업도 조달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입찰 절차와 비용은 줄이고, 사회적 가치를 지키지 않는 기업에 대해선 시장 문턱을 높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