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중 중심의 무역 집중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한국은 2010년대 이후 대중 수입이 늘고, 일부 품목의 대미 수출이 확대되며 미·중 교역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로 인해 공급망 리스크, 대중 수입 업종 내 실업 확대, 미국 보호무역 표적화, 거시경제 불안정성 등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정성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일 발표한 '2010년대 이후 무역구조 변화와 경제안보에 대한 함의' 보고서에서 "정부는 통상정책과 무역진흥시책을 병행해 무역을 다변화하고, 수입 경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중 무역 수지는 적자 전환, 대미 무역 수지는 흑자 확대

201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됐다. 반면 대미 무역수지는 흑자가 확대됐다.

이는 대중 수출이 줄어든 가운데, 대중 수입이 늘고, 대미 수출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2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대미 수출 비중은 8%포인트(p) 늘었고, 대중 수입 비중은 6.6%p 늘었다.

대중 교역에 변화가 생긴 건 중국의 정부 주도 산업 정책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가 원인이다. 이로 인해 반도체·전자기기, 정밀기기·LCD, 기계류·생활가전 등 대중 수출은 줄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간재, 자본재, 소비재에서 대중 수입은 늘었다.

대미 무역흑자는 '미중 무역전쟁'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정 연구위원은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대미 수출이 늘었다"며 "미국 내 투자 확대와 친환경차 수요 증가도 대미 수출 확대를 이끌었다"고 했다.

품목별로 보면, 자동차·부품, 반도체·전자기기, 기계류·생활가전 등 세 품목이 대미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특히 자동차 및 부품 수출은 2021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대미 무역 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무역집중도 높은 韓, 산업·고용·거시 경제도 위험

KDI는 한국의 무역 집중도가 주요국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일본,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과 비교할 때, 한국의 국가 기준 무역 집중도는 가장 높았다. 품목 기준 무역 집중도도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KDI는 이러한 구조가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높은 대중 공급망 의존도는 주력 산업은 물론 미래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화학, 석유제품, 1차 금속, 전자반도체 등 산업규모가 큰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했고, 이차전지, 로보틱스,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도 중국의 공급망 장악력이 높았다.

국내 제조업 고용 감소와 일자리 악화도 우려된다. 정 연구위원은 "미국처럼 중국산 수입 증가로 제조업 노동자의 실업과 임금 하락, 지역경제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방은 경제 쇠퇴와 인구 감소도 우려된다"라고 경고했다.

대미 수출 증가세도 미국 정책에 따라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미 무역흑자가 일부 품목에 집중돼 있어 관세 표적이 되기 쉽다. 최근 미국은 자동차, 가전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예고했는데,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라 타격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DI는 현재 무역구조가 거시경제 불안정성을 키운다고도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수출이 특정 산업에 집중돼도 교역 상대국을 다양화하면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특정 품목에 수출이 집중되고 미중 의존도가 높아 거시경제 불안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 "CPTPP 가입 서두르고, 무역위 기능 강화해야"

KDI는 교역국을 다양화하는 무역 다변화 정책, 불공정 무역 감시 기능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특정 품목 의존도가 높아, 교역국을 다양화해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 연구위원은 ▲양자·다자 무역협정 체결 ▲무역 전환 유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수출 잠재 수요국,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국가와 협정을 앞당기고, 효과가 낮은 기존 협정은 개방 범위와 깊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교역 품목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검증된 정책을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략산업 기업에 국내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수입 증가로 피해를 본 기업 노동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무역위원회의 불공정 무역 감시 기능을 강화해 국내 산업 피해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