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의 '깜짝 인하'에 나섰지만, 금융시장의 반응이 차갑다. 3년물 국고채 금리는 0.1%포인트 이상 내리면서 즉각적으로 반응했지만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서는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원화는 소폭 강세를 보였고, 주식시장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금리 인하를 통한 한은의 내수 부양 의지보다도 경기 둔화 가능성이 확대된 점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발(發) 재정정책 리스크가 확대되고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성장 경고음이 커진 가운데 한은마저 금리 인하의 근거로 성장 둔화를 제시하면서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다.

◇ 국채금리만 '금리 인하' 연동… 환율·증시는 공식 '역행'

29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한은이 금리를 내린 지난 28일 원·달러 환율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4원 내린 1395.6원을 기록했다. 1391원에 개장한 환율은 금통위가 금리를 연 3.25%에서 3.0%로 내린 직후 1396.3원까지 치솟았지만, 이내 하락하면서 1395원 선에서 마감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로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오히려 원화가 강세를 보인 것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스크린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주식시장 반응도 신통치 않다. 통상 금리가 인하되면 내수 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돼 주가지수가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 결정 당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모두 소폭 오르는 데 그쳤고, 다음날은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전장보다 1.95% 하락해 2455선에서 마감했고, 코스닥지수는 2% 넘게 떨어져 680선이 무너졌다.

기준금리에 민감한 국채금리만 금리 인하에 연동해 떨어졌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28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0.3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638%를 기록했다. 2022년 3월 말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9.7bp, 9.2bp 내린 연 2.686%, 연 2.788%로 마감했다.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일단 대외 요인의 악재들에 기준금리 인하의 긍정적 효과가 묻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키운 반도체 불확실성에 더해, 장 초반부터 일본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일본의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설을 키웠다"며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저리로 엔화를 빌려 고가치 자산에 투자) 청산에 대한 걱정을 유발했는데,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증시 폭락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가능성이 작아진 것도 영향을 줬다. ECB에서 공개시장운영과 조사·통계 업무를 책임지는 '실세'로 꼽히는 이자벨 슈나벨 집행이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50bp 인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빅컷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유로화가 강세를 보였고 달러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다"면서 "국내 금리보다도 달러 흐름이 원화 환율에 더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이 '경기 부진'을 재확인했다는 점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단 실망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간된 골드만삭스 보고서도 이런 심리에 쐐기를 박았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내년 거시 경제는 달러 강세와 관세의 불확실성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한국의 수출과 산업 생산의 성장 속도가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률 둔화가 전망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경민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긍정적인 변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자생력이 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인하가) '없는 것보단 낫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천소라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 등 워낙 한국 자체의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단순히 금리 인하 효과가 즉각 반영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다만 증시 움직임은 일별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추세적으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떨어진 국채금리로 정부재정 여력 확보… 재정도 역할 해야"

시장에선 단기간에 가계의 소비 여력 개선 등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그보다 가산금리에 큰 변화를 주면 가계대출 금리는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며 "그것이 가계 거시건전성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의 미시적 대응"이라고 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대외적 요인뿐 아니라, 국내 고용시장을 봐도 핵심 연령층의 고용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 단기간 금리 인하로 인해 소비 여력이 크게 개선되거나 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시차를 두고 통화정책의 효과가 발휘되는 만큼 섣불리 인하 효과 유무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시각도 덧붙여졌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의 효과는 짧게는 3~6개월, 길게는 2년까지도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며 "벌써 연속 인하까지 했고 내년에도 이런 흐름을 이어간다면, 대략 내년도 상반기쯤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앞으로 가파른 통화 완화 정책을 취하되, 재정 정책도 이와 일관된 운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백윤민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중 중립금리(연 2.5%로 추정) 아래로 금리를 내려야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다만 현재 국내 경제가 금리 인하만 가지고 확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재정 정책도 일방향으로 통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등 자산이 아닌 실물 경기로 돈이 풀리려면 재정을 활용해야 한다"며 "그럼 내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로 떨어진 국채 금리가 정부의 재정 운용 여력을 키워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공동락 연구원은 "국채 금리가 떨어지면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줄어들 테니, 경기 부양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며 "국채도 좀 더 여유롭게 발행할 수 있으니,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화·재정 정책은 어디까지나 단기 처방일뿐, 근본적으로는 '구조 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천소라 교수는 "현재의 거시 경제 상황이 통화·재정을 다 풀어서 고성장할 수 있는 과거와 같은 상황이 아니다"라며 "생산이나 인구 구조적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통화·재정 정책들이 그 떨어지는 속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줄 수는 있으니, 부작용을 점검하면서 신중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