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연말마다 국고채전문딜러(PD·Primary dealer)들과 진행하는 발행 전략 협의회가 올해는 금융사별로 따로따로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PD들이 한데 모이던 기존 방식과 다르게 올해는 처음으로 '각개'로 진행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국고채 금리 담합 조사 결론이 임박한 가운데, 혹여나 의심을 살까 조심스러워하는 PD 업계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기재부 국채과는 지난 18일 기준 PD사 총 18곳 중 17곳과의 발행 전략 관련 협의를 완료했다. 국채과는 지난 10월 말부터 회의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장중엔 협의가 어려운 만큼, 기재부가 오후 5시 장 마감 후 짬을 내서 PD사들을 각각 접촉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발행 전략 협의회는 보통 연말쯤 PD사 전원이 모여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 이례적으로 이렇게 협의 방식을 바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년 국고채 발행량이 올해보다 25% 넘게 증가하는데 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를 비롯해 내년도 경제 상황과 금융 여건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12월에 PD 협의회를 따로 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실무적인 미팅을 완료했기에 열리더라도 형식적인 자리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PD사가 1대1로 기재부 국채과와 발행 계획에 대해 소통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결정의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더욱 적극적인 소통을 하기 위함이지만, 공정위가 1년 넘게 PD사들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국고채 금리 담합' 조사의 영향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적 차원의 소통마저 오해를 살까 봐 금융사들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국고채 금리 담합 조사는 공정위가 지난해 6월부터 국고채 PD로 지정된 증권사 11곳·은행 7곳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PC와 휴대전화 메신저 등을 통해 비슷한 나이대의 딜러들이 입찰 전 금리 담합을 논의한 정황을 잡고, 이것이 일종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짬짜미'가 아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공정위는 당초 올해 3분기 내에는 해당 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11월 중순인 현재까지도 제재 여부 등 결론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는 발송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연내 결론도 물 건너가고, 내년 초에나 심사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한 금융사당 조사해야 할 소속 PD가 3~4명에 이르는지라, 직접 대면조사 할 사람만 50~70명 정도로 많아 조사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에 따라 PD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됐다는 점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사를 받으러 자주 이동해야 하고, 트레이딩하는 현업까지 챙겨야 하니 직원들이 굉장히 피로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PD 업계에서 일부 인력 이탈 현상도 감지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당 인력들은 꼭 PD가 아니더라도 소형 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거액을 받고 옮겨가는 사례도 있다"며 "업계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만약 공정위에서 '담합이 맞다'고 결론이 날 경우, 우리 국고채 시장에도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 규정(국고채권의 발행 및 국고채전문딜러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국고채 입찰 시 담합 등 국고채 시장 질서를 현저히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PD의 자격을 정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 대상이 되는 PD들의 경우 대부분 그대로 현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국채를 인수할 주체가 몽땅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예비국고채전문딜러(PPD·Preliminary Primary Dealer)라는 제도가 마련돼 있긴 하지만, 4곳에 불과해 수요를 모두 채우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기재부 국채과 관계자는 "딜러 협의회는 추후 열 것"이라며 "개별사별 대면 미팅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된 것을 계기로 제대로 각사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