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이 지난 6일 세종시 KDI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DI 제공

“빠르면 5월, 늦어도 7월에는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물가 하방 위험을 더 걱정해야 하는 ‘저물가’의 시기가 왔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6일 세종시 KDI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5월 초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근원물가 상승률이 2.3%를 찍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대로 들어왔다. 5월에 충분히 금리를 내릴 수 있었다”라면서 “다음 금통위가 7월이었다. 물가 안정을 더욱 확신하게 됐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KDI는 지난달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그 배경으로 ‘고금리 장기화’를 지목했다.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통화정책 전환이 지연되면서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기업의 설비 투자도 부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브리핑에서 정 실장은 “경기·물가 상황에 맞춰 금리가 좀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금융 안정 등 다른 게 강조되다 보니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물가가 진정된 상황에서도 고금리를 계속 유지한다면 경제 상황이 계속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정 실장은 한국 경제의 심각한 내수 부진을 지적하며 통화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소매판매가 계속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고, 설비투자도 일시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마이너스다. 고용도 둔화하고 있다”면서 “내수 회복을 시사하는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10월에 금리를 내려도 내년 2분기, 건너 뛰면 내년 하반기부터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라면서 “소비 회복은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융 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려는 데 대해선 “지금 대출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주택 구매를 위해 빌린 돈으로 금융 안정 수준을 우려할 시기는 아니다”라면서 “통화 정책을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이나 대출 등을 보고 결정하면 경기 전반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는 단계적으로, 안정적으로 가는 게 낫다”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른 시점에 통화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 자꾸 미루다 보면 급격히 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정 실장과의 일문일답.

그래픽=정서희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통화정책 목표인 2.0%에 도달했다. 이후 물가 흐름 어떻게 전망하나.

“근원 물가(가격 변동폭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 상승률도 2.1%였다. 물가가 꽤 안정됐다. 반면 내수 경기는 상당히 부진하다. 오히려 내수 부진으로 물가가 하방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물가 안정이라는 게 2%대에서 상하방 압력을 고려해야 하는데, 하방 위험을 더 걱정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왔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할 때 통화 정책 전환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가 가장 적기였다고 보나.

“KDI가 하반기 경제전망을 5월에 발표했다. 당시 4월 물가지표까지만 보고 추정한 것이다. 그 때 이미 근원물가가 2.3%였다. 2% 초반으로 갔고, 소비자물가 지수로도 2%대로 내려왔다. 우리는 5월에 충분히 금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봤다. 그 다음 금통위가 7월이었는데, 물가 안정을 더욱 확신하게 됐을 것이다. 빠르면 5월, 늦어도 7월에는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상과 달리 금통위는 8월에도 금리를 동결 결정했다. 이제 10월 금통위가 다가온다. 그 때는 내릴 것으로 보나?

“잘 모르겠다. 지금 한은과 KDI의 경기나 물가에 대한 평가는 사실 성격이 다르지 않다. 최근 한은에서 금융 시장 상황을 계속 불안 요인으로 보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얼마나 가시적으로 안정세가 나타날지 모르겠다. 다만 이달 중으로 가계 대출 관련 정책이 나오고, 가계 대출 증가율이 잡히는 형국이 나타나면 10월 금통위에선 금리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0월 초에 나올 9월 소비자물가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겠다.

“유가가 내려가는 상황 등을 보면 안정적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8, 9, 10월 물가 상승률이 높았던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1%대로도 내려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 10월 초에 발표되는 9월 물가가 낮게 나오고, 5대 은행 대출 증가세가 잡혔다는 시그널이 나오면 (한은으로선) 금리를 내리겠다고 하지 않겠나.”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이 지난 6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DI 제공

―한은과 KDI의 경기에 대한 평가가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내수와 관련해선 시각차가 보인다. 정부와 한은은 ‘내수 회복 조짐이 보인다’라고 하지만, KDI는 ‘내수 회복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았나.

“모든 평가가 다 일치할 순 없다. KDI 내에서 연구진들이 보는 경기 평가 역시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내수 지표 가운데 KDI에서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산업활동동향에서 소매 판매와 서비스 관련 생산을 눈 여겨 본다. 소매 판매는 최근 계속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회복세를 얘기하기엔 이르다. 설비 투자도 마찬가지다. 7월에는 항공기가 많이 도입되면서 설비투자가 조금 늘었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계속 마이너스다. 건설 기성도 마이너스 영역에 들어와 있다. 지금 상황에서 내수 회복을 시사하는 지표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선 취업자 수 증가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근거로 고용 지표를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일자리도 보는 부분이 좀 다르다. 우리는 고용이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전에는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0만~3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10만명 내외로 조정돼 있다. 이 역시 원인은 내수 부진이라고 본다. 더구나 현재 일자리 수 증가를 견인하는 것은 고령층이다. 경기와 상관없이 늘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시장에서 고용하는 부분은 저조하다.”

―지난달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하반기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2.2%에서 0.4%로 크게 조정했다.

“한은은 우리보다 더 낮게 잡았다. (한은은 8월 경제전망에서 설비투자 증가율을 0.2%로 종전 전망치보다 3.3%p 하향 조정했다.) 실제로 설비투자 실적이 좋지 않다. 7월엔 항공기 도입으로 증가했는데 일시적인 것이다. 8월에는 많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건 자체가 좋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설비투자 여건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 투자를 하려면 결국 대출을 받아야 한다. 금리가 높으면 그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금리를 내리기 시작해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통화정책을 전환하면 실물 시장에선 언제쯤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나?

“일단 금리 내리는 시점이 중요하다. 신호가 오면 시장 금리는 먼저 내려갈 수도 있다. 10월에 금리를 내려도 내년 2분기, 건너 뛰면 내년 하반기부터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다.”

―6~9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다는 얘기 같다. 금리 인하의 효과가 가장 빨리 나타나는 영역은 어디라고 보나.

“보통 투자에서 빨리 나타난다. 기업이 이러한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 경영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소비 회복은 시간이 더 걸린다. 시중 변동 금리와 보증 금리가 조정이 되려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회의'에 앞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9월 미국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어떻게 전망하나.

“미국도 여전히 물가가 높긴 하지만, 하향 안정세가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반면 고용 지표는 악화하고 있다. 그런 점을 봤을 때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미 연준의 통화 정책 전환이 국내에도 영향을 주게 될까.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기준 금리와 국내 시장 금리가 연동돼 움직였던 측면이 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시장에서도 금리가 내려갔던 것이다. 한국의 기준금리도 미 금리와 연동되는 경향성을 보였다. 미국과 별개로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부동산 시장이나 가계 부채 때문에 통화정책 전환을 미룰 수 있다는 한은의 입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목표가 여러가지가 있을 때 어느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가는 시기마다 다르다. 지금 한국 금융 시장의 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인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채무자들이 빚을 못 갚고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부실이 이어지면서 금융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 가계 대출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이다. 일부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금융기관의 위기로까지 가진 않는단 얘기다. 또 많은 대출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주택 구매를 위해 빌린 돈이다. 그런 측면에서 금융 안정 수준을 우려할 시기는 아니라고 본다.

부동산도 지표를 보면 수도권은 오르지만 지방까지 전체로 보면 하락 시장이다. 통화 정책을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이나 대출 등을 보고 결정하면 경기 전반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생계형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우려할 만한데.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지금 고금리로 인해 취약계층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쪽이 걱정된다면 지금 가장 먼저 해야할 게 금리 인하다.”

―금리 인하의 속도는 어떻게 가야 하나. 내수 회복을 위해선 이른바 ‘빅컷’이라고 하는 큰 폭의 금리 인하도 필요하다고 보나.

“금리 인하는 단계적으로, 안정적으로 가는 게 낫다고 본다. 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는 꾸준히 25bp씩 내리는 게 좋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른 시점에 통화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 자꾸 미루다 보면 급격히 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일관적이지 않은 발언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비판이 많다. 어떻게 보나.

“금융 정책도 시스테믹하게 체계를 갖고 접근했으면 한다. 물론 경제가 혼란스러울 때는 평소 시스템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위기가 아닐 때는 시스템으로 금융 시장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향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

“부동산 시장 자체에 대한 전망은 잘 안 했던 것 같다. 최근 발간한 경제동향에서는 수도권에 신규 입주 물량 등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고, 비수도권은 어느정도 입주 물량이 제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수도권에선 상방 압력이 생기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대출 규제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주택 수요를 둔화시키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