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장기화하던 고금리 터널의 끝이 보인다. 지난 4월부터 2%대에 진입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 물가안정목표인 2.0%를 기록했다. 통화정책 전환(피벗,Pivot)기가 도래했다는 관측 속에 가계부채 증가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증이라는 변수를 맞닥뜨렸다. 금융 안정을 위해 아직 금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내수 부진을 대응하기 위해선 금리 기조를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충돌한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딜레마를 어떻게 보는지 경제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를 휩쓸었던 고금리 기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난 3월 금리를 내리면서 포문을 열었고, 캐나다·유럽 중앙은행도 지난 6월 잇따라 금리를 낮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오는 17~18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인 2%로 내려왔고, 1400원까지 치솟으며 물가를 자극했던 환율도 1330원대로 하향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내릴 생각을 굳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섣부른 인하는 경계하는 모습이다. 마지막 퍼즐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여전히 가파른 모습을 보이면서 금융불안을 유발하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음 달 11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 대한 국내 경제 전문가들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조선비즈가 경제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과반수 전문가는 금리 인하를 전망했지만, 동결을 예상한 쪽도 적지 않았다. 인하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내수 경기 부양 필요성을, 동결을 전망한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근거로 들었다.

◇ “경기 하강 신호 분명” vs “가계부채 등 금융불균형 심화”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한동안 0.50%로 유지되던 기준금리를 지난 2021년 8월부터 인상해 작년 1월 3.50%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내리 동결하면서 역대 최장기간인 1년 6개월째 기준금리를 묶어두고 있다. 올해부터는 소수의견 없는 만장일치 결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긴축 기조가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에서는 10월 금통위에는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로 내려오면서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열린 금통위에서도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인하 가능성을 높였다.

그래픽=손민균

조선비즈 설문조사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점치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응답자의 60%인 12명은 10월 금통위에서 현행 연 3.5%인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동결을 예상한 사람은 나머지 40%(8명)였다.

금통위 결정 전망과 별도로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지, 동결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도 동일하게 12:8이 나왔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금통위가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류덕현 중앙대 교수와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금리 인하 결정을 예상하되, ‘금리 동결’이 적절한 선택이라고 답했다.

금리 인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내수 부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일 발표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수출 호조에도 소매판매와 건설투자의 부진이 지속하는 등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원인으로 ‘고금리 기조’를 지목했다. 높은 금리로 인해 소비 회복세가 더디다는 주장이다. KDI가 ‘내수 부진’ 진단을 내린 것은 작년 12월부터 10개월째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부진이 지속되면서 경기침체가 시작되고 있어 경기진작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경기 하강 신호가 분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도 각각 ‘극심한 내수 침체’와 ‘내수 부진’을 근거로 금리 인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금리 동결을 주장하는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 상황을 봤을 때, 금리 인하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가계부채 급증,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금융 안정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점증하고 있다”고 했다.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기는 나쁘지 않은 편이며 가계부채 및 자산가격의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전문가 설문에선 박희찬 센터장을 제외한 모든 증권사 거시경제리서치 담당이 10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 게 눈길을 끌었다. 금리 결정 방향에 대해선 모든 증권사 리서치 담당이 ‘금리 인하’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 전문가 75% “1년 6개월간 금리 동결, 적절했다”

그간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판단한 전문가 수가 우세했다. 대통령실과 정치권,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 실기(失期)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 20명 중 75%인 15명은 ‘금리 결정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25%(5명)만 ‘금리를 좀 더 일찍 내렸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금통위 금리 결정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응답자 중 75%는 ‘한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으니 대통령실과 정치권에서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통화정책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한 이는 20%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 인하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전문가 20명 중 45%(9명)는 현재 기준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35%(7명)은 가계부채를 꼽았다. 대다수가 가파른 집값 상승세로 가계부채가 급등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15%(3명)는 ‘미국 경제’와 연동되는 문제라고 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전환이 지연돼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게 한은의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서 한국의 금리인하도 밀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5%(1명)는 불안정한 물가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래픽=손민균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전환 필요성을 시사한 전문가들이 더 많았다. 금융 안정보다 내수 부진을 우선적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전문가 20명 중 12명(60%)은 우선적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로 ‘내수 부진’을, 나머지 8명은 ‘금융안정’을 꼽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수 부진’을 우선 대응 과제로 꼽으면서 “수출경기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최근 수출경기의 회복세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면서 “그 전에 금리 인하로 내수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부채문제는 다른 정책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안정’을 우선 대응 과제로 꼽으면서 “가계부채 및 부동산 가격 안정이 중요하며, 현재 기준금리가 과도하게 높은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허준영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안정이 훼손될 시 금리인하가 내수 진작에 제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부교수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부교수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