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지난 2022년 11월 미 공군 F-16 수명 연장 사업을 통해 출고한 F-16 전투기. /대한항공 제공

내년부터 국내 대·중견기업이 수입하는 항공기 부품에 붙는 관세의 감면율이 매년 20%포인트(p)씩 감소한다. 항공기 부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는 관세법 특례 조항이 올해말로 일몰되면서다.

그동안 항공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에서는 국내 항공산업의 성장을 위해 무관세 조치를 연장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최근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기획재정부에 ‘2024년 세법개정안 의견서’를 통해 항공부품 수입 무관세 조치 연장을 재차 요구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현재 정부 세법개정안 검토는 마쳤다며, 국회에 공을 돌렸다.

2일 기재부에 따르면 수입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가 올해 연말로 일몰된다. 내년부터 매년 20%p씩 관세 감면율이 줄어 2029년부턴 관세 감면 혜택이 모두 사라진다.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조치 내용는 관세법 89조 ‘세율불균형물품의 면세’ 조항에 들어 있다. 해당 조항이 신설된 1975년부터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 체결한 이후 특례 조항이 아닌 FTA를 통해 관세를 면제받으라며 관세법 특례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단계적 일몰을 하려고 했으나, 국회 논의를 통해 두 차례 연장됐다.

항공기 업계에서는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가 사라지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항공업계가 부품 수입 과정에서 받은 관세 감면액은 약 1000억원에 달한다. 관세 감면 조치가 사라지면 이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올해 2분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국내 주요 6대 항공사의 영업이익은 3700억원이다. 대한항공은 4134억원 흑자를 냈지만,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은 각각 312억원, 94억원, 2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세 회사는 지난해 2분기엔 각각 1089억, 231억, 19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었다.

항공사 영업이익이 급감한 주요 요인으론 정비비 인상이 거론된다. 지난 2분기 아시아나항공의 정비비는 19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제주항공의 정비비는 5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증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비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비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가 사라질 경우 항공사의 비용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FTA를 통해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FTA를 통해 관세를 면제받으려면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한데, 항공기 부품은 부품마다 원산지 기준이 달라지고 종류가 다양해 해외 부품 공급 업체들이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정부는 지난 2021년에도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조치를 일몰하려고 했으나, FTA 규정 미비를 고려해 일몰 기한을 3년 연장했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대한항공 항공기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올해 세법개정안 검토 과정에서 해당 관세법 특례 조항의 일몰 연장을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예정대로 일몰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항공업계에선 관세 면제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계속 감면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반론이 있었다”면서 “당초 법안대로 내년부터 감면 혜택을 축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는 다른 방법으론 민간항공기교역협정(TCA) 가입이 있다. TCA는 모든 민간 항공기 부품에 관세 부과를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부속 규정이다. 미국·일본·독일 등 33개국이 가입해 있다. TCA 가입 시 대한항공 같은 항공사들은 무관세로 항공기 부품을 들여올 수 있다. 항공사들은 2010년 대부터 TCA 가입을 요구해 왔으나, 관련 업계와 관계부처 간 의견이 달라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항공사와 국토교통부는 TCA 가입을 서두르자는 입장인 반면 국내 항공기 제조사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TCA에 가입하는 순간 정부가 헬리콥터 조달 계약에서 KAI(한국항공우주산업)에 우선권을 주는 것 등 국내 기업에 대한 지원이 무역 분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기 제조업체에 대한 정부의 R&D 지원도 TCA에 보고해야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TCA에 가입을 하면 항공기 부품에 영구적으로 무관세가 적용되지만, 현재 한국은 가입이 안 된 상태”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관세 면제 제도가 일몰될 경우, 국내 MRO(항공기 정비) 등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몰 연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 연장에 대한 결정권은 국회로 넘어간 상황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항공기 부품 수입 관세 면제는 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논의할 수 있는 의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번 관세 면제 조치 일몰도 정부안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연장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