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공정한플랫폼을위한사장님모임,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관계자 등이 배달의민족 수수료 인상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의민족(배민)의 수수료 인상에 정부가 뿔났다. 이달 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소상공인 지원·보호 차원에서 수수료와 배달비 경감 방안을 자율상생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했는데, 배민은 정부 발표 일주일 뒤 수수료 인상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중 ‘배달플랫폼 상생협의체’를 발족하고 플랫폼 업체의 수수료와 배달료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협의체에선 최근 중개 수수료를 44% 인상한 배민의 수수료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배민에 대한 규제와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일부 전문가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배민이 시장 지배자 지위를 악용해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한 것은 ‘불공정 거래 행위’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7일 “이달 중 배달플랫폼 상생협의체가 발족할 예정”이라며 “배민의 수수료를 포함해 다양한 의제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4개 부처는 지난주 첫 회의를 열고 상생협의체 발족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배민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플랫폼 3사의 참여 의지가 변수이지만,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상생협의체가 발족할 것이라는 게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정부 내에선 배민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정부는 지난 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배달 플랫폼과 자영업자 간의 상생 협력을 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배달료와 수수료 부담으로 자영업자의 수익성이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배달료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 이후 일주일만인 지난 10일 배민은 배달 중개수수료를 종전 6.8%에서 9.8%로 3%포인트(p)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수수료 인상률은 44%를 초과한다. 수수료·배달비 부담 완화를 강조했던 정부로선 면이 서지 않게 됐다. 특히 정부가 배달료를 지원할 경우 자영업자가 아닌 배민으로 돌어가게 된다는 비판도 받을 가능성이 있어 난감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배달플랫폼 자율협의체 출범을 추진하던 기재부의 관계자는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수수료 결정 방식은 자영업자의 비용을 너무 늘린다. 이해관계자 일방에게만 부담을 안겨주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정부가 기업의 가격 결정을 일방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배민이 배달업종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시장 지배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수료율을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배달플랫폼 문제에 대해 ‘자율협의체’를 통한 상생을 추구하며 직접적인 개입을 피해 온 정부의 대응 수위가 보다 강경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공정위 관계자는 “사업자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 여부 등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의 관계자는 “정부로선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기에 수수료 인상 발표를 했다는 점과 인상률 수준이 자영업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점, 인상 결정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자율 상생이라는 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 내에선 자영업자에 대한 배달비 지원 사업을 지역 기반 공공 배달앱 중심으로 설계해 배달플랫폼간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자율상생협의체에서 배달료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배달료를 지원하면 혜택이 자영업자에게 가는지, 배민 등 플랫폼업체들의 수익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는지 사업 구조를 파악 중인 단계”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처음 하는 사업인 만큼 설계가 중요하다”면서 “예산 지원 규모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예산실 관계자도 상생협의체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일각에선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 고(高)수수료로 인한 자영업자의 피해를 호소해 ‘배민 엑소더스’를 촉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까지도 나온다.

전문가들도 배민의 수수료 인상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정부 역할론’을 주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민이 최근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한 것은 자율상생협의체가 발족하면 수수료를 마음대로 올리기 힘들다고 보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며 “배민의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이러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린 것은 공정위가 ‘공정 경쟁’ 관점에서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물가 상승률이 3%만 올라도 난리인데, 이번 수수료 인상률은 무려 44%이지 않나”라며 “배민이 소비자 이익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배당금을 많이 가져가기 위한 비윤리적인 경영 결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