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등 해외에서 원정 진료 후 용역 비용을 가상자산으로 수취하거나, 리베이트로 돌려받는 수법으로 소득세를 탈루한 의사들이 적발됐다. /국세청 제공

국내에서 병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중 일부가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원정 진료를 하고 받은 수익을 은닉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들은 해외 원정 진료를 현지병원 세미나 등으로 가장하고 관련 매출을 누락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포탈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부 혐의자는 해외 원정 진료 대가를 현금 등 통화 대신 추적이 어려운 가상자산으로 수취한 후 차명 계좌로 국내에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최근 대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으로 둔갑해 국외 재산을 숨기거나 해외 용역 대가를 빼돌린 역외탈세 혐의자 41명을 적발하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적을 바꾸거나 법인 명의를 위장한 신분 세탁 탈세자가 11명, 용역대가로 가상자산을 받으며 수익을 은닉한 코인개발업체 9명이 적발됐다. 또 해외 원정 진료나 현지 법인을 이용해 용역대가를 숨긴 탈세자 13명, 국내에서 키운 알짜자산을 국외로 무상이전한 다국적기업 8명도 포함됐다.

원정 진료 후 소득을 누락한 의사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 속도가 완화된 엔데믹 시기에 개인이나 팀을 꾸려 동남아 국가로 원정 의료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또 해외 현지 브로커에게 환자 유치 수수료를 허위·과다 지급하고 차액을 개인 계좌로 돌려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치 수수료를 과다 계상해 소득 규모를 줄여 소득세를 탈루한 것이다.

국세청은 이들이 가상자산으로 수취한 원정 진료 대가와 수수료 과다지급분 수십억원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할 방침이다.

신분 세탁을 악용한 탈세 행위도 대거 드러났다. 이들은 미신고 해외 수익에 대한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주민등록 등 흔적을 지우고 외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국적 변경으로 해외 자산 및 계좌의 소유주가 외국인 명의로 바뀌는 경우 국세청이 국가 간 정보교환 등을 통해 해외 자산 및 수익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중 일부 혐의자는 황금비자(일부 국가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현지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이용해 조세회피처의 국적을 취득한 후, 국내에 재입국한 뒤 숨겨둔 재산으로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국내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입국하면서 은닉자금 일부를 투자 명목으로 국내에 반입해 사적 용도로 썼다. 해외 은닉자금을 국내・외 외국인끼리의 이전거래인양 동거인의 계좌에 송금해 호화 저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해당 탈세인의 해외 탈루소득에 소득세를 과세하고, 자금 일부를 받은 동거인에게는 증여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 은닉 자금을 추적해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미이행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