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규제인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을 9월로, 3단계 시행을 내년 7월로 늦췄다. 자영업자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미칠 충격을 고려했다는 게 이유지만, 이 결정으로 둔화하던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DSR이란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기간 중 발생한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을 감안해 DSR 산정 시 일정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 1분기 가계부채 1883兆… 전기比 0.1% 줄어

2일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5일 7월로 예정됐던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을 9월로 연기했다. 가계부채 위험이 줄었으니 자영업자의 지원대책과 부동산PF 사업성 평가에 집중해 급격하게 부채를 낮췄을 때 생겨나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그래픽=정서희

한국은행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부채(가계신용통계 기준)는 전기 대비 0.1% 줄어든 188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은 작년 1분기(-0.8%) 이후 4분기 만이다. 가계부채에는 가계대출(생활·부업을 위해 받는 대출)과 판매신용(신용카드 및 할부금융사를 통한 외상거래)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도 현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인 A씨가 30년 만기로 주담대를 받을 때 1단계 DSR을 적용하면 최대 6억3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2단계가 시행되면 3000만원, 3단계가 도입되면 1억원이 추가로 줄어든다. 그런데 2단계와 3단계 도입 시기가 늦춰지면서 당분간 6억3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다. 30대 오모씨는 “스트레스DSR 2단계가 도입되면 대출한도가 크게 줄어 당분간 내 집 마련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2단계 도입도 늦춰지고 3단계는 내년 하반기까지 밀리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DSR이 강화되기 전에 집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했다.

◇ 가계대출은 증가세… 4월 4.1兆, 5월 5.7兆 늘어

하지만 최근 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전체 가계부채의 93.8%(1767조원)를 차지하는 가계대출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가계대출은 2~3월 감소하다가 4월(+4조1000억원) 증가로 전환했으며, 5월(+5조4000억원)에도 늘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4월 4조5000억원에서 5월 5조7000억원으로 확대된 영향이 컸다.

대출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연체율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1분기 0.5%대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0.98%까지 오르면서 1%에 가까워졌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39%, 기타대출 연체율은 1.86%로 집계됐다. 고(高)금리가 지속되면서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오르고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그래픽=손민균

이에 일각에서는 스트레스 DSR 적용을 늦추는 것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더 가팔라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빠르면 9월, 늦어도 4분기에는 금리를 내린다는 예상이 나온다”라면서 “이는 국내 시장금리를 낮춰 가계부채를 자극할 텐데, 여기에 DSR 적용 지연 효과가 겹쳐지면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지금보다 가팔라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스트레스DSR 적용을 일주일 남겨두고 갑자기 연기한다는 것은 시장에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준 것”이라면서 “자영업자 부담을 완화 외에도 부동산 PF시장을 안착시킨다는 게 정부가 내세운 명분인데, 이는 집값을 띄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부동산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고 했다.

◇ 한은 “필요하다면 DSR 적용 범위 확대할 수도”

한국은행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한은의 정책목표인 ‘금융안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점진적으로 80%까지 낮추겠다고 공언한 것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3.5%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안정보고서(2024년 6월)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한 금융시스템분석부장, 서평석 금융안정기획부장, 이종렬 부총재보, 장정수 금융안정국장, 김정호 안정분석팀장. /연합뉴스

한은도 이런 점을 주시하고 있다. 이종렬 부총재보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보고서’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 기대에 더해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상승 전환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크다”면서 “필요시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동석한 장정수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GDP 성장률 이내로 관리한다는 게 (한은의)원칙”이라면서 “필요하다면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수단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세자금대출과 중도금대출, 신생아특례대출 같은 정책금융은 DSR 산정 과정에 제외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황 연구위원은 “DSR 적용 범위는 현재 이미 넓은 편”이라면서 “이 범위를 더 넓힌다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낮출 수 있겠지만, 스트레스DSR에서 일반 DSR로 전환되면서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