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쿠팡이 지난해 투입한 미국 로비 자금의 절반 이상을 올해 1분기에 쏟아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이 미국 정부 로비에 주력한 까닭은 플랫폼법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나라의 플랫폼법 도입 과정과 달리 유달리 우리나라에서 통상 이슈가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26일 미국의 로비 현황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오픈 시크릿’에 따르면 쿠팡의 모기업 쿠팡Inc는 지난해 전체 투입한 로비자금(143만달러)의 58%에 달하는 83만달러를 올해 1분기에 썼다. 로비스트도 지난해 5명에서 올해 9명으로 늘어났다.

쿠팡이 로비한 곳은 백악관을 포함해 미 상무부, 미국무역대표부 등이다. 쿠팡은 로비 활동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무역이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불리한 규제와 관세를 방지하기 위한 활동도 포함됐다.

1분기 동안 쿠팡이 순손실(2400만달러)을 기록하면서도 로비에 집중한 이유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배적 플랫폼 사전 지정’을 포함한 강도 높은 규제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플랫폼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플랫폼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온라인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쿠팡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쿠팡으로선 플랫폼법을 자사의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여길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 공정위가 쿠팡의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행위’ 혐의에 대해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플랫폼의 공정 거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쿠팡에는 부담이다.

이런 시기에 쿠팡이 미국 내 로비에 주력하는 것은 결국 한국 정부의 플랫폼 규제에 대한 미국 정부와 경제계의 반발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미국은 공정위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기업이 한국 법안의 영향을 받아 제재당할 경우 국제 무역에도 여파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국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클리트 윌렘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지난 1월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플랫폼법이 현실화하면 무역확장법 301조(불공정 교역 관련 규제 조항) 발동 등 양국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래픽=손민균

우리 통상 당국도 이런 문제를 의식한 듯 플랫폼법으로 인한 통상 마찰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월 기자 간담회에서 “주요 파트너들이 공식·비공식 우려 사항을 제기하고 있다”며 “정책을 결정할 때 통상 관점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며 플랫폼법 제정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플랫폼법에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내 기업들의 강력한 로비 활동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통상 이슈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는 반응이다. 지난 5월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플랫폼법 도입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가지고 우리나라 시장 환경이나 통상 이슈를 종합적으로 살펴 우리나라에 가장 바람직한 내용으로 법안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서도 특정 기업을 사전에 지정하는 방식의 플랫폼법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EU나 일본은 미국과 통상 이슈가 불거진 적이 없어 공정위에 문제를 제기한 게 이례적이라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플랫폼법 외에 김범석 총수의 동일인 지정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로비 자금이 급증했다는 것은 시급을 다투며 로비력을 동원할 만한 사안이 있다는 것”이라며 “쿠팡Inc의 경우 플랫폼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총수의 동일인 지정을 피하려는 문제와도 결부된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 초 대기업 집단을 공표하면서 대기업 총수의 동일인 지정과 관련한 조건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김 의장은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미국 회사인 쿠팡Inc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지만 국내 법인에는 지분이 없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는다’ 등 공정위가 정한 예외 규정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쿠팡은 로비 활동 강화에 대해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기업들의 통상적인 움직임이라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삼성전자·SK·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이나 다른 미국 상장사들도 미국 대선 등 역동적으로 변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 내 대관 활동 인력과 비용을 크게 늘리는 추세”라며 “쿠팡의 미국 대관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쿠팡의 혁신과 성장을 미국에 알리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