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2년 가까이 유지했던 긴축기조를 끝내고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는 캐나다가 4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먼저 금리를 내린 스위스와 스웨덴에 더해 유로존과 캐나다까지 통화정책 피벗(pivot·전환)에 나서면서 각국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한국의 금리 인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국내 여건을 보면 금리를 내릴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으로 내려온 데다,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됐던 가계부채비율도 하락세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여부와 불안정한 환율이 관건이다.

◇ 유럽·캐나다, 연이틀 금리 인하… “긴축 필요성 사라져”

7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 시각) 유럽중앙은행(ECB)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4.5%에서 4.25%로 0.25%포인트(p) 낮췄다. 예금금리는 4%에서 3.75%로, 한계대출금리는 4.75%에서 4.5%로 모두 0.25%p씩 인하했다.

그래픽=정서희

한국은행은 금융사와 한은 간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만 정한다. 그러나 ECB는 이 금리 외에 시중은행이 ECB에 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예금을 맡기고 받는 예금금리와 ECB가 시중은행에 하루 신용공여를 제공하고 받는 한계 대출 금리도 결정한다.

이로써 ECB는 2022년 7월 빅스텝(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것)을 단행한 후 시작한 고금리 기조를 2년 만에 마무리했다. ECB가 금리를 인하한 것은 2016년 1월(-0.05%p) 0.0%로 낮춘 이후 처음이다. ECB는 그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 줄곧 제로 금리를 유지했었다.

전날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5.00%에서 4.75%로 0.25%p 낮췄다. 캐나다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4년여 만이다. 캐나다는 2020년 3월 금리를 0.25%로 낮춘 후 한동안 금리를 유지하다가 2022년 3월부터 작년 7월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캐나다는 추가 금리 인하도 시사했다. 티프 맥클렘 캐나다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는 추가적이고 지속되는 증거가 나오면서 더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면서 “경기가 예상대로 지속되고 물가 상승률이 완화한다면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韓 인하도 탄력… 소비자물가·가계부채비율 내림세

올해 3~4월 금리를 인하한 스위스와 스웨덴에 이어 캐나다와 유로존까지 금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금리인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은 2021년 8월부터 작년 1월까지 금리를 0.5%에서 3.5%로 올렸다. 마지막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2012년 7월(-0.25%p·3.00%)이다.

국내 여건은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5월 연속 내리면서 지난달 2.7%로 내려왔다. 근원 CPI(농산물·석유류 제외지수) 상승률은 2%로 집계되면서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0%)를 달성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 상승률은 2.2%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최근에는 가계부채비율도 내림세다. 지난달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Global Debt)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년 전보다 4.4%p 내린 100.1%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하락 폭 기준으로는 영국(-4.6%p ·78.5%)에 이어 2위다. 다만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조사대상 34개국 중 1위다.

물론 불확실성도 있다. 가장 불안한 것은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다. 미국은 4월 CPI 지수가 3.4% 오르면서 3월(3.5%)보다 내려왔지만,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 2%를 크게 웃돌고 있다. 연준이 중시하는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도 지난 4월 2.7% 오르면서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지 않으면 금리 인하는 어렵다.

원·달러 환율도 불안 요인이다. 환율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고조된 지난 4월 16일 장중 1400원까지 오르면서 1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이후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1360원대까지 내려왔지만, 최근 강(强)달러 흐름이 거세지면서 137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가 2.3~2.4%로 낮아지는 추세가 확인되면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면서 “금리 인하가 가능한 조건은 조성돼가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8월도 가능지만 연준이 7월에 내릴 가능성이 작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한은은 10월에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만 빠르게 안정되면 좋을 것 같은데 부담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ECB나 스위스, 스웨덴이 먼저 금리를 내리면서 달러 약세 요인이 줄어들어 환율의 빠른 하락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서두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