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2021년까지 동해상에서 상업 생산을 한 가스전. 4500만배럴이 매장돼 있던 지역에 설치한 이 가스전은 1조4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충돌로 인한 중동발 지역 분쟁이 겹치면서 국제유가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포항 앞 바다 심해에서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가스·석유전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고유가 속 글로벌 오일 메이저들의 심해 유전 개발이 빨라지는 가운데, 한반도 해역에 대한 자원 개발 열기가 가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포항 앞 바다에서 막대한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 축적한 동해 심해 탐사자료에 대한 심층 분석을 해양기술평가 전문기업인 미국의 ‘액트지오’(Act-Geo)사에 의뢰했다. 액트지오사는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동쪽으로 38~100㎞ 해상, 해저 1000m의 동해 심해 유망구조에서 최소 35억에서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부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정부에 작년 말 전달했다. 정부는 이후 액트지오사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 추가 검증을 거쳐, 이날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1998년 동해에서 4500만배럴 규모의 가스전을 최초로 발견한 뒤,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상업 생산을 한 바 있다. 당시 가스전은 수심이 비교적 얕은 ‘천해’ 지역에서 발견됐다. 동해의 심해지역에서 대규모 가스·석유전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해 유전 개발은 수심이 얕은 천해 수역보다 시설 투자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자원이 매장돼 있을 장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발견하면 천해 지역보다 자원량이 많아 장기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 기후위기 대응이 강조되면서 심해 유전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심해 유전은 천해보다 탄소 배출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글로벌 오일 메이저 업체들의 심해유전 개발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에너지 컨설팅 기업 웰리전스(Welligence)의 파블로 메디나 대표는 지난달 5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해양 유전 개발 관련 콘퍼런스에서 “장기적인 원유 생산, 손익분기점 감소, 자원 잠재성, 저탄소 배출 등으로 심해 유전 개발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리스타드 에너지’도 “심해 유전 개발 비용이 내년 사상 최고치에 이를 것”이라며 “2027년엔 기존 심해 유전 개발과 신규 개발 투자금이 1307억달러(약 186조원)에 달해 2023년 대비 30%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오일 메이저들이 심해 유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 때문이다. 여기에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시설 투자비 회수가 예전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반영됐다. 특히 최근처럼 유가가 80달러선을 오르내리면 심해 유전 시설비를 빠르면 5년 내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유전 운영기간 30년을 대입하면, 5년은 시설투자비, 나머지 25년은 순수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액트지오사가 추정한 동해 심해 가스·석유전의 자원 부존 추정량은 35억배럴에서 140억배럴에 달한다. 이를 현금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500조원에서 최대 2000조원 규모가 된다.

지리적 이점도 강점이다. 동해는 국제 핵심 에너지소비국인 한·중·일 3국과 가까워 채굴한 자원을 운송하는 비용도 적게 든다. 여기에 울산을 중심으로 동해 지역에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등 인프라도 이미 구축돼 있어, 기반 시설 건설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은 그동안 가스 수입을 많이 해 와 LNG 터미널 등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돼 있다”면서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곤 큰 투자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 투자 요건이 좋은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전 주변에 대규모 수용처가 있는지도 중요한 척도인데, 가스를 많이 쓰는 세 나라(한·중·일)가 주변에 있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유전 가능성에 글로벌 오일 업체들의 한반도 해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기업 이름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세계 최고 수준 기업들이 개발 참여 의지를 밝혔다”면서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개발 기업들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힐 정도로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심해 자원개발에 필요한 투자 재원과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메이저 자원 개발 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우리는 심해 자원 생산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다. 해외 투자는 필수인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