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8월부터 법인택시 월급제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택시 업계가 둘로 갈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6만8000명의 한국노총 산하 노조원들은 제도 시행을 반대하지만, 2000명 규모의 민주노총 산하 택시 노조는 찬성하며 노노갈등이 일어난 상황이다.

정부는 법인택시 완전 월급제가 전국에서 시행될 경우 택시업계 인력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국회에서 월급제를 제지하는 개정안이 발의될 경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30일 정부와 택시업계에 따르면 오는 8월부터 택시 운송 사업자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제11조2항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지난 2019년 8월 신설된 택시발전법 제11조2항은 ‘일반택시운송사업 택시 운수종사자의 근로 시간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할 경우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안대로 주 40시간 이상의 근로가 의무화되면 택시 기사들은 일정한 월급을 받게 된다. 2021년 1월 서울에서 우선 시행됐고, 공포 5년이 되는 올해 8월부터 전국적으로 법인택시 월급제가 자동으로 시행된다.

법인택시 월급제는 택시운전사의 처우 개선과 안정적인 소득 보장을 위해 노조의 찬성 속에 도입됐다. 기존 사납금제보다 기사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택시 기사가 큰 폭으로 줄고 택시 운행률도 낮아지며 택시 회사들이 경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한국노총 산하 노조와 민주노총 산하 노조 간 입장에 차이가 생겼다.

현재 법인택시 노조원은 약 7만명이다. 이 중 6만8000여명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택시노조연맹에, 2000명 남짓이 민주노총 산하 민주택시노조에 가입했다. 전국택시노조연맹은 지난 9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인택시 월급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법인택시 월급제는 택시업계의 상황과 운송원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로 법인택시 업계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전국택시노조연맹은 “운수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강제하는 규정은 역설적으로 고령화된 택시 운수 종사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시간 근로에 노출되게 한다”며 “단시간 근로를 희망하는 법인택시 기사 취업을 원천 차단해 택시업계의 인력난을 가중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조는 월급제 시행으로 기본 급여는 확보할 수 있지만, 성과급이 줄어 택시 기사의 실질소득은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전국택시노조연맹은 택시 노사 간 합의로 현실에 맞는 근로 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5월 임시국회에서 택시발전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응답 없이 회기를 마쳤다.

특히 개정안은 민주택시노조의 반대로 철회된 전력이 있기도 하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초 개정안을 발의한 지 2주 만에 철회했다. 총선을 앞두고 노조의 반대가 거세자 돌연 철회한 것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해 9월 임금체불에 항의하고 택시 완전 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며 분신해 숨진 택시 기사 방영환씨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월급을 통해 택시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택시 월급제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택시월급제 시행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택시발전법 11조2항에 따른 택시월급제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2대 국회가 꾸려지면 개정안이 발의될 가능성은 있다. 정부는 국회에서 개정안 법안이 발의되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발주 용역에서도 택시발전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발주해 한국교통연구원이 내놓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전국 모든 지역에서 월급제가 시행될 경우 운송 수입금이 적정 운송원가보다 부족하게 걷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의 경우 최소 17만5085원, 대전의 경우 최대 152만7645원가량 적정 운송원가보다 수입이 줄어들어 법인 택시회사가 운영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우려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는 공감하나 전국적으로 (법인택시 월급제를) 적용하기에는 부작용이 큰 상황”이라며 “법인택시 기사 대부분이 가입한 노조가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택시업계는 요금 인상 등으로 인한 승객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입 전체를 회사에 납부하고 월 단위로 정산하는 전액관리제 실시 등 택시 제도가 바뀌면서 배달업계 등으로 떠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0만명이 넘던 법인택시 기사는 지난해 7월 기준 7만126명까지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택시 기사 수급 부족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월급제 시행의 진짜 문제는 서울 및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나타날 것”이라며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서울 이외 지역들에서 경직적인 임금체계를 감당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연한 임금체계를 운영할 수 있도록 법 제도가 개정돼야 수요 변화에 걸맞은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