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 신탁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 씨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및 시민사회대책위 활동가 등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강제퇴거 위기의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야당이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정부가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두고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 안정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은 야당 개정안의 핵심인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을 배제했다. 대신 피해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매 입찰에 참여해 매입한 뒤, 피해자에게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정부는 서민들의 청약저축으로 조성된 기금을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야당안에 대해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반대해 왔다. 전문가들은 정부안이 기금 손실도 최소화하고, 사기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국토교통부는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진 우선매수권을 LH가 받아 피해 주택을 경매로 넘긴 다음, LH가 스스로 입찰에 참여해 매입하는 구조다. 주택을 낙찰받은 LH는 직접 산정한 감정가에서 경매 낙찰가를 뺀 차익을 피해자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피해자가 해당 주택에 계속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시세보다 50~70% 할인된 비용으로 최대 20년까지 살 수 있도록 보장한다.

정부는 야당이 제시한 안에 대해 기금 손실 규모가 큰 데다, 실무적 집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야당안은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전세금 반환청구권이라는 채권을 기초로 하는데, 이 채권은 가격을 평가하기 굉장히 어렵다”며 “국민주택기금을 주려고 하면 예산이 편성돼야 하는데,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협의를 해야 하고 국회에서 심의해야 해 굉장히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으로는 신속한 구제가 어렵고 공공과 피해자 사이에 채권 매입 가격을 두고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행정부 수장인 제가 맡아 집행해야 하는데,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금으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갚는 게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논쟁도 있지만, 실무적으로도 굉장히 집행이 지난한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안·정부대안 비교. /국토교통부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일부를 우선 돌려주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선구제 후회수’를 골자로 한다. 야당은 전세사기 구제에 필요한 재원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확보하도록 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은 지난 2021년 말 49조원에서 올 3월 13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청약 저축 납입액이 줄어들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여파다. 정부는 4조~5조원을 투입해야 피해자의 채권을 모두 매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의 평균 전세보증금 1억3000만원에 내년 5월까지 전망되는 피해자 수(3만6000명)를 곱한 규모다.

반면, 정부안은 재정 소요가 적다. 정부는 5조3000억원 규모의 ‘LH 공공임대 예산’과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 매입 비용’으로 설정된 7000억원 등 총 6조원의 예산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야당안처럼 추가로 예산이나 기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을 활용해 피해자 지원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도 현실성을 이유로 정부안의 손을 들어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안은 피해자 지원 방안을 더욱 구체화해 종전보다 현실적인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저가 낙찰받은 주택을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은 공공이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에게 당장의 주거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야당이 내놓은 국민주택기금을 통한 ‘선구제 후회수’는 정상적인 절차나 법적인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안은 법적 절차대로 진행하는 만큼 선별 지원이나 도덕성 시비 등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