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 미만 전세거주자가 고(高)금리·고물가 시대에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으로 전세보증금의 실질 가치가 하락한 데다,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에 대한 이자비용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고물가와 소비: 가계의 소비품목 구성과 금융자산에 따른 이질적인 영향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최근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평균 3.8%였다. 2010년대 연평균 상승률 1.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가계연령·주거형태별 물가상승 및 금리상승 영향. /한국은행 제공

금리도 급등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신규취급액·가중평균 기준)는 2021년 1월 2.83%에서 올해 3월 4.5%로 급등했다. 이 기간 기준금리가 0.75%에서 3.5%로 급등하면서 시중금리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미치는 영향은 가계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고물가·고금리는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축소시키는 경로와 ②자산·부채의 실질가치를 하락시키는 경로를 통해 민간소비에 영향을 줬는데, 가계의 소비품목과 재무상황에 따라 영향의 크기가 달랐다.

실질 구매력 측면에서는 식료품 등 필수재 소비 비중이 큰 고령층이 가장 많은 손해를 봤다. 소비품목 비중을 감안한 실효 물가상승률이 2020~2023년 중 16%로 집계되면서 저소득층(15.5%)과 청장년층(14.3%), 고소득층(14.2%)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은 고령층의 물가 영향이 연금 등 공적이전소득 증가 덕분에 상당 폭 완화됐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산·부채가치 하락 효과는 물가와 금리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우선 물가 상승은 가계 금융자산과 부채의 실질 가치를 하락시킨다. 채권자는 불리하고 채무자는 유리하다. 반면 금리 상승은 자산가치를 높이고 이자비용을 늘려 물가 상승의 영향을 상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측면에서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가장 큰 손해를 입은 것은 45세 미만 전세거주자였다. 이들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어 물가 상승 시 혜택을 봐야 하는 연령층이지만, 전세보증금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가치가 떨어졌다. 게다가 금리 상승으로 이자 비용까지 늘면서 피해가 중첩됐다.

반면 45세 이상 자가 거주자들은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으로 이들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의 실질가치가 하락했을 뿐 아니라, 금리 상승으로 자산가치까지 늘면서 이득을 본 것이다. 대출이자가 늘어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다소 줄었지만, 자산 보유로 얻는 이자수입이 많아 상승 효과가 더 컸다.

45세 미만 자가보유자와 45세 이상 전세보유자들은 손해와 이득을 동시에 봤다. 45세 미만 자가보유자는 물가 상승으로 대출의 실질가치가 하락했지만, 금리 상승으로 이자비용이 늘면서 효과가 상쇄됐다. 45세 이상 전세보유자들은 물가 상승으로 전세보증금의 실질가치가 하락했지만, 금리 상승으로 이자 수입이 늘면서 손실을 만회했다.

정동재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과장은 “저연령층에서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이자비용에 비해 이자소득이 더 많아 이득을 본다”면서 “반면 젊은층은 보유자산이 없는데 부채를 일으켜 집을 마련하거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해서 이자비용이 더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