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상반기에 열린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긴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6월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데다, 우리나라 성장 전망도 높아지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진 영향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은의 매파(긴축 선호)색이 이전보다 옅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내수 부분의 회복이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 압력을 언급하면서도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유지한 점도 이런 평가에 힘을 실었다.

◇ 美 금리인하 지연에… 상반기 인하 무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22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2·4·5·7·8·10·11월과 올해 1·2·4월에 이어 이번까지 11번 연속 금리를 묶어둔 것이다. 이번 회의가 상반기 중 열리는 마지막 금통위인 만큼, 금리 인하 시점은 하반기로 밀리게 됐다.

그래픽=손민균

이번 금통위는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상태에서 열렸다. 이날 새벽 공개된 5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참석 위원 중 여럿(various)은 “추가 긴축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된다면 그럴 행동에 나설 의사가 있다”고 언급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던 3월과 비교해 더욱 매파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은도 이런 점을 감안해 현재 금리 수준을 한동안 유지하겠다는 표현을 금통위 의결문에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의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가 전망의 상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성장률 전망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줬다. 한은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5%로 예상했다. 종전 전망치 2.1%에서 대폭 높였다. 1분기 GDP 성장률(전기대비)이 종전 전망(0.6~0.7%)의 두 배 수준인 1.3%로 집계된 데 따른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수출이 생각보다 좋았다”면서 “정부 재정지출 확대도 소비에 좋은 영향을 줬다”고 했다.

그러나 향후 3개월 뒤 금리 수준을 묻는 말에는 금통위원의 의견이 엇갈렸다. 총재를 제외한 6인 중 5명은 현재 수준이 적정하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했다. 민간소비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상승 폭이 완만해 물가 불확실성을 키울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종전 전망과 같은 2.6%로 유지했다. 소수점 둘째자리 숫자가 올랐지만, 변동 폭이 첫째자리를 바꿀 정도로 크지 않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최근 정부가 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하 정책을 연장한 것도 물가 전망치를 유지한 이유였다.

한은도 이런 점을 고려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예상한다”면서 “(물가 상승률이)내려가는 흐름이 잘 보이면 금리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성장률과 물가경로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4월 회의와 비교해 훨씬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 “통화정책 정상화 의지 여전… 덜 매파적이었다”

시장에선 대체로 이번 금통위가 비교적 ‘비둘기파적’(dovish·통화 완화 선호)이었다고 해석했다. 이번에 한은이 연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면서 이에 따른 물가의 ‘상방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통화 정책을 정상화(금리 인하)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는 시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백윤민 교보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한은은 올해 물가 전망치(2.6%)에 변화를 주지 않았고, 내수 부분의 회복이 여전히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평가했다”며 “이 총재가 이달 초 조지아에서 4월 당시와 전제가 달라졌음을 언급하며 금리 인하 전면 재검토를 시사했지만, 이번 금통위에선 이에 대해 톤을 조절했다”고 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도 “기자 간담회에서 이 총재가 ‘현재 금리 수준이 제약적’이라고 강조한 표현 등이 비둘기파적으로 해석됐다”며 “2분기 민간소비 부진 이후 하반기부터 회복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 전망 역시 하반기 금리 인하를 전제한 것으로 본다. 이번 금통위를 기점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국고채 시장 역시 소폭 강세(금리 하락)를 보였다. 한은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매수세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7bp(1bp=0.01%p) 떨어진 연 3.402%에 거래를 마쳤다. 2·5·10년물 금리 모두 1bp 내외 하락세를 보여 각각 연 3.435%, 연 3.421%, 연 3.472%로 마감했다. 20·30·50년물은 소폭 상승 마감했다.

다만 이 총재가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을 강조한 것처럼, 시장에서도 최초 인하 시기와 연내 인하 폭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위원과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금리 인하 시점을 8월로,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과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10월로 예상했다.

안 위원은 “10·11월 연달아 인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고,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연내 한 차례 인하에 그칠 것이며 가파른 금리 하락 베팅에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결국 향후 물가 둔화 흐름과 미 연준의 금리 안정화 양상이 하반기 중 한은의 통화정책 경로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원화 가치는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5원 내린 1362.4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간밤 공개된 5월 FOMC 의사록에서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확인되면서 상승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금통위 기자회견 이후 환율이 떨어지면서 전 거래일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