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배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 기후로 사과와 배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지만, 중기적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일시적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급등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짚었다. 다만 기후 변화에 대응해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승희 연구위원은 9일 발간한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KDI 현안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기후 변화와 기상 악화에 의한 작황 부진을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의 주요인으로 지목했다. 일조량 부족과 여름철의 예상치 못한 잦은 비나 가뭄 등은 농산물 작황에 악영향을 미쳤다. 날씨 충격 중에서는 기온에 비해 강수량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고, 특히 여름철 강수량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신선식품 가격은 평균 기온이 추세 대비 10도 상승하는 경우 최대 0.42%포인트(p)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평균 강수량이 추세 대비 100mm 증가하는 경우 최대 0.93%p 오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날씨 충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지구온난화로 여름철 기온 상승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더 빈번하고 강하게 일어나는 경우, 이로 인한 물가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름철 날씨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KDI 제공

다만, 기온과 강수량 충격이 1~2개월 정도 소비자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근원물가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원물가란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로,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준다. 이 연구위원은 “중기적으로는 식료품이나 에너지 가격의 변동이 향후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 형성에 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기상 여건 변화로 인한 신선식품 가격 상승은 소비자물가에 단기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며 “중기적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통화정책이 작황 부진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에 대응할 필요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지적인 날씨 충격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농산물 수입 확대 등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구조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제기됐다. 아울러 기후 변화에 대응해 품종 개량 등으로 기후 적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