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규모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해 시행하던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를 상당수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R&D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현지 시각) 오후 조지아 트빌리시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나 “사회간접자본(SOC) 성격이 있는 것을 제외한 R&D에 대해 예타를 완화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현지 시각) 조지아 트빌리시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한국 기자단과 오찬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R&D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국가사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정부 재정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자는 차원에서 2008년 도입됐다. 그러나 경제성 평가에만 통상 7개월이 걸리는 것 등이 연구개발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최 부총리는 R&D 사업에 대한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R&D 예산이 27조원이 좀 안되는 규모인데, 세제지원이 3조~4조원가량이다. 둘을 합치면 30조원이 넘는다”면서 “지원만 늘리는 게 아니고 효과성 떨어지는 건 덜어내야 한다”고 했다.

최 부총리는 R&D 사업에 대해 재정과 세제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재정지출과 세제지원은 역할이 달라야 한다”면서 “민간이 잘 하는 분야는 더 잘하도록 세제지원이나 금융지원을 하고, 민간이 잘 못 하는 것은 정부가 재정지출로 지원하거나 보조금을 주는 게 맞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며 “민간이 할 수 없는 산업 생태계나 소재·부품·장비 인프라 조성은 재정지출로 지원하고, 기업이 잘하는 것은 세제와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서 그는 “반도체가 굉장히 중요한 국가전략산업이기 때문에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개선세를 보이는 경제지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최 부총리는 전 분기 대비 1.3% 증가하면서 ‘깜짝’ 성장세를 보인 1분기 국내총생산(GDP)에 대해 “아직 국민이 체감하기에는 이르지만, 지표상으로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연간 성장률 전망의 상향 조정도 시사했다. 최 부총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성장률을 2.6%로 수정했는데, 정부도 성장률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그런(전망치) 수준은 기관마다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1인당 GDP 4만달러 시대도 머지않았다고 했다. 최 부총리는 “1인당 GDP가 성장률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윤석열 정부 내에서 4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선진국에 가까워졌다고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현지 시각) 조지아 트빌리시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한국 기자단과 오찬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쏟아낸 것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보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대해 “몇 년 전부터 지속된 공급 충격으로 물가를 잡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책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CPI는 1년 전보다 2.9% 오르면서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정부의 물가안정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

최 부총리는 “최소한 물가 상승률이 지금보다 확 튀어 나가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유통 단계별로 가장 효율적인 단계를 찾고, 수입이 가능한 품목은 할당관세(일시적으로 관세를 낮춰주는 것)를 통해 공급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반기에는 물가 상승률이 2%대 초중반으로 안정화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녹록지 않은 세수 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아직까지 세수 부분에 있어서는 올해 어떻게 될지 판단하기가 이르다”면서 “부진했던 작년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세목도 있고, 회복세로 접어든 올해 영향을 받는 세목도 있다. 어떤 영향을 더 받느냐에 따라서 (세수 실적이)달라질 걸로 생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