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법 개정으로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가 대폭 늘어났지만, 정부가 수은에 어떻게 출자할지, 얼마나 출자할지를 두고 정부와 업계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일단 올해 2조원 규모 현물 출자를 단행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나, 방산업계에서는 연 4조원 규모 출자를 요구하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폴란드와 추진하는 수출 계약 건 등을 고려하면 현 수준의 정부 출자 계획으로는 금융 지원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4일 방산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수은 출자 규모를 연 4조원까지 늘려달라고 기재부에 요청 중”이라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자주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국회는 지난 2월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종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수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자본금 한도가 늘어난 것은 말 그대로 ‘주머니’가 커진 것일 뿐, 여기에 실제 ‘돈’을 채우려면 정부의 출자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은의 금융 지원 여력이 확대된다.

기재부는 한도 증액 금액인 10조원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출자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내부적으로 현재 ‘2조원 현물 출자’ 방식을 추진하기로 잠정 결정하고, 검토 단계를 거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지분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토 결과 적정하다고 최종 판단되면 추후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실제 출자가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업계는 올해 2조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폴란드와의 수출 계약 건”이라며 “출자 제한이 풀리긴 했지만, 계약을 여러 건 하려면 연 2조원 출자로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는 업계의 이런 요구에 대해 다소 난감하단 입장이다. 정부가 수은에 출자하는 방식은 현재 진행 중인 ‘현물 출자’와 재정을 소요하는 ‘현금 출자’ 방식이 있다. 원칙은 국회의 심의를 거쳐 현금 출자를 하는 것이 맞지만, 시급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현물 출자 방식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현물 출자로 4조원을 한 번에 단행하기엔 규모가 너무 커 무리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현금 출자 방식을 함께 동원해야 하는데, 실제 출자가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예산으로 출자하려면 2025년도 예산안에 반영해야 한다. 올해 예비비를 동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성·시급성·불가피성 등 예비비 집행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국기와 정부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번에 무작정 금융 지원을 늘리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잇따를 수 있다. 폴란드로의 차관 규모가 너무 커 상환을 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수은의 자본금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수은도 여신 심사를 엄격히 해 대출을 내주는 것이고, 폴란드란 국가가 부도나거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그런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앞서 수은은 2022년 국내 방산업체들이 폴란드와 124억달러(약 16조6900억원) 규모의 1차 수출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금융 지원에 나선 바 있다. 현재 300억달러(약 40조3800억원) 규모의 2차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데, 자본금을 늘린 수은이 이번에도 등판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출자 방식이 모두 확정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논의 중”이라며 “현금출자 방식으로 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