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지난 2021년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한 정책수단을 3년동안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관련 조직을 확충하고, 조사연구도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사업의 핵심이 되는 정책도입 부문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11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한은이 지난 2021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제시한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을 통한 녹색기업 대출 지원 ▲대출 적격담보증권에 녹색채권 추가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 범위에 녹색채권 추가 ▲환매조건부매매(RP) 및 증권대차 담보 대상증권에 녹색채권 추가 등 4가지 중 현재까지 도입된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기약없는 금중대·적격담보증권 대상 확대… 국감서도 지적
당시 한은은 4가지 수단이 친환경 사업을 하는 기업의 이자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중소기업에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인 금중대는 녹색자금 공급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적격담보증권(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인정해주는 담보물)과 RP매매 대상에 녹색채권이 추가되면 관련 채권 발행이 원활해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3년째 실적을 내지 못하면서 공염불에 그쳤다.
물론 한은이 기후변화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정책수단 도입과 함께 ▲관련 조직 신설 ▲조사·연구 강화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 3가지 분야에서는 성과를 거뒀다. 2021년에 기후변화 대응 전담팀을 설치하고, 이를 올해 1월 총재 직속 조직인 '지속가능성장실'로 확대 개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후변화 관련 조사·연구 부문에서도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한은은 기후변화가 1인당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을 낮춘다는 내용을 담은 분석 보고서를 냈고,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모델을 자체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도 자체 탄소배출량 공개를 추진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수단을 도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작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와 관련된 지적이 나왔다. 당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은이 금중대 등 녹색성장 기업 지원 수단을 도입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은 뒤 "한은이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 한은, G20 중앙은행 중 기후변화 대응 13위
한은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주요국 중앙은행은 앞장서서 기후변화 대응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년부터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우수한 기업의 회사채 매입을 늘리는 '녹색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올해 1월에는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로드맵인 '2024~2025년 기후 및 자연계획'을 발표하고 기후리스크를 추적하기 위한 통계지표 개발 등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22년 미국의 6대 대형 은행(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 체이스, 모건 스탠리, 웰스파고)이 참여하는 기후 시나리오 분석 시범사업을 실시했으며, 작년 10월에는 전체 연결자산 1000억달러 이상 대형 금융회사를 위한 기후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 원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런던 기반 비영리단체(NGO)인 '포지티브 머니'가 2022년 11월 발표한 '녹색 중앙은행 평가표'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13위를 차지했다. 10점 만점인 조사 연구 분야에서는 10점을 받았으나, 50점 만점인 통화 정책, 금융 정책에서 각각 1점, 6점을 받으면서 하위권에 위치했다. 중국(6위)과 일본(8위), 인도네시아(9위), 인도(12위)보다도 순위가 낮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녹색 대출 취급 기준 등 구체적인 제도와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금중대 등 정책수단과 당장 연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와 계속 협력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기후변화 관련 조사·연구는 다방면에서 지속해왔다"면서 "앞으로도 기후변화 리스크를 통합적으로 측정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