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고정지출을 제외한 변동지출에 현금만 사용하고 있다. 고(高)물가에 생활비 지출이 늘어나자, 직접 현금을 뽑아 쓰면서 소비를 관리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A씨는 “이전보다 많은 돈을 아끼는 것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지출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29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현금 챌린지’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현상은 작년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은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관련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유튜버 '콩이'가 현금 챌린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현금챌린지는 고정지출을 제외한 한 달 생활비를 현금으로 인출한 뒤 용도·기간별로 나누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식비나 의류비, 생활용품 구입비, 병원비 등 자주 사용하는 항목을 정해 현금을 분류하고 바인더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바인더를 지갑처럼 들고 다니면서 돈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분류해 놓은 항목에서 꺼내 지불한다.

이런 방식으로도 지출 관리가 잘 안 되거나, 많은 돈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생활비를 일주일 단위로 나눠 관리하기도 한다. 이번 주에 사용할 현금만 바인더에 넣어 생활한 뒤, 다음 주가 되면 새롭게 돈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도 주간 지출을 사전에 항목별로 분류해 관리한다.

현금챌린지의 특징은 쓰고 남은 돈도 현금으로 관리한다는 점이다. 예산을 쓸 때 항목을 나눈 것처럼 남은 돈을 저축할 때도 별도의 저축용 바인더에 용도별로 구분해 관리한다. 예컨대 여행자금이나 기념일 비용,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 구입비용 등으로 나눠 보관할 수 있다. 일부 참가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이렇게 쌓인 돈을 세보는 영상을 찍어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현금 사용을 늘리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출 금액을 숫자로만 확인하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와 달리, 현금을 쓰면 가진 돈이 줄어드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다. 절세 측면에서도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연말정산에서 현금영수증은 신용카드(15%)보다 2배 높은 30%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유튜브에 게시된 현금챌린지 설명 영상들. /유튜브 캡처

현금챌린지의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중에는 관련 제품들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현금을 분류하기 쉽게 제작된 ‘현금 바인더’나 저축 상황을 표시해주는 ‘세이빙(saving·저축) 보드’가 대표적이다. 세이빙 보드는 저축 횟수나 금액을 쉽게 표기할 수 있게 만든 코팅지다. 바인더에 잘 들어가는 크기로 제작된다. 그밖에 지출·저축 용도 구분에 도움이 되는 스티커도 판매된다.

유튜브 등 SNS에도 현금 챌린지 관련 영상이나 참여 방법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에 ‘현금 챌린지’로 검색하면 100개에 달하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한 유튜버가 올린 현금 챌린지 설명 영상은 업로드 후 4개월 동안 조회수가 23만을 넘겼다. 이 유튜버는 구독자 수가 증가하자 클래스101에서 현금 챌린지 사용법을 소개하는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진 MZ세대(1980~2000년 초 출생)가 소비를 줄일 방법을 찾는 과정에 현금 챌린지가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거지방’(익명 채팅방에 소비 내용을 공유하는 방)이나 ‘무(無)지출 챌린지’(특정 기간 동안 아예 소비하지 않는 것)가 인기를 끌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기가 나쁘고 물가도 높은 상황에서 지출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놀이”라면서 “현금 생활로 지출을 줄이면서 부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돈이 쌓여가는 걸 보면서 절약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발권당국인 한국은행도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현금 사용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 현금 챌린지 현상을 파악해 내부적으로 공유한 바 있다”면서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등장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절약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은행에 예금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