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도입한 '한국형 점도표(dot plot)'가 시행 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한은은 한국형 점도표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고, 보다 긴 범위에서 금리 전망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포워드 가이던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정책 확대 필요성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한국형 점도표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3개월 뒤 기준금리 전망치를 취합한 것을 말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분기별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찍어 발표하는 '점도표'를 본뜬 것이다. 다만 한은은 연준처럼 별도 자료로 만들지는 않고, 이창용 총재가 취합된 내용을 언론에 설명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 시행 후 1년 3개월… "정책 전환기에 유용한 지표"

21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최근 한은 경제연구원은 '한국은행의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한국형 점도표)가 금융시장 등에 미친 영향 분석'을 주제로 외부 연구용역 공모를 진행 중이다. 연구용역은 오는 8월 말까지 마무리되며, 최종 제출된 논문은 이르면 연말, 늦으면 내년 초쯤 'BOK경제연구'나 한은이 발간하는 학술지인 '경제분석'에 게재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1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논문이 공개되면 도입 1년이 지난 한국형 점도표의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형 점도표는 지난 2022년 11월 24일에 열린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처음 발표됐다. 이후 올해 1월까지 총 10차례 공개되면서 시장에 금리 인상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형 점도표의 효과가 아직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통화정책이 바뀌는 시기에는 유용한 지표로 쓰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예를 들어 금리 인상기에는 정책 전환 인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는 위원이 한두 명 나오면 인상이 정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이견이 생겨나고 파열음이 커지는 상황이 지속되면 (통화정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전환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1년여간 공개된 점도표는 기준금리 발표에 앞서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역할을 했다. 기준금리가 연 3.25%로 인상된 2022년 11월에는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고 한 금통위원(총재 제외 6인)이 단 한 명에 불과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고, 바로 다음에 열린 1월 금통위에서는 실제로 금리를 3.5%로 올렸다. 이후 인상 의견이 동결보다 다소 우세한 흐름이 이어지다가, 올해 1월엔 위원 전원(총재, 공석 제외 5인)이 동결을 주장하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조기 인하 가능성을 고려해 2월 금통위도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점도표 도입 등에 힘입어 한은은 대외적으로도 선진국보다 빨리 물가를 안정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글로벌 금융전문지 '더뱅커'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올해의 중앙은행장으로 선정됐다. 더뱅커는 당시 "(이 총재가)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세계 경제가 고전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를 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면서 한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선진국에 비해 빠르게 둔화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 이창용 "점도표 확대 고민"… 전망 범위 넓어질 듯

한은은 그간의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제도 운영 방향을 개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전망 시점이 향후 3개월로 한정돼 있어 기준금리의 장기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은이 벤치마킹한 연준의 점도표도 당해년도를 비롯해 향후 3개년 치 최종 금리(연말 기준) 수준, 장기 금리 전망을 제시하는 등 한은보다 공개 범위가 넓다.

작년 12월 13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공개한 점도표. 총 19명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예상한 향후 금리 수준이 점으로 찍혀있다. /연준 제공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달 1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2024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도 한국형 점도표를 확대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한은은)향후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한국형 점도표)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 또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계까지 확장해서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현재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차기 한국금융학회장인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하나로 한은의 기조 변화를 파악해야 해서 정보가 너무 제한된 상황"이라면서 "금리 전망을 조금 더 긴 시계로 보여주면 금융시장이 미래에 대한 예상을 반영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망 범위를 넓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은행이 제시하는 금리 전망치와 실제 금리 흐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시장 변동성이 오히려 확대될 수 있는 탓이다. 특히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포워드 가이던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진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전망과 실제 금리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자 이런 비판에 직면했다. 연준은 지난 2022년 5월 자이언트 스텝(75bp 인상, 1bp=0.01%포인트)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한 달 만에 이를 단행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고,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리겠다던 유럽중앙은행(ECB)도 같은 해 7월 빅스텝(50bp 인상)을 결정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이후 도이체방크 등 투자인행들은 "포워드 가이던스가 끝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일각선 "실제 금리와 괴리 크면 시장 변동성 키워" 우려

이 총재는 전망의 전제조건을 잘 설명하면 실제 정책 결정이 달라져도 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앞선 학술대회에서도 "중앙은행이 전제 조건을 잘 설명하고 조건 변화에 따라 정책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시킬 경우 경제주체들이 경제 여건 변화에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뉴스1

한은이 매년 4차례(2월·5월·8월·11월) 발표하는 경제전망을 올 하반기부터 세분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현재는 상·하반기와 연간 전망치(성장률·소비자물가·경상수지·고용지표)만 공개하고 있는데, 이르면 8월부터 분기별 수치를 추가한다. 한은이 생각하는 경기·물가 경로를 자세히 공개해 경제 주체들이 기준금리 변경 시점을 더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보완하더라도 한국형 점도표 확대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연준이 제시한 점도표도 실제 정책금리와 맞지 않은 경우가 있는 만큼, 국내 시장상황이 급변하면 한은도 점도표대로 금리를 결정하지 못할 수가 있다"면서 "이런 부분에서 비판이 거세질 수 있어 점도표 확대 필요성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