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서울만 한 땅덩이를 가졌지만,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5위에 이르는 나라다. 아시아의 대표 부국(富國)이다. 싱가포르는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나라다. 대통령은 마치 싱가포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양대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Government ofSingapore Investment Corporation)과 테마섹(Temasek)은 1970~1980년대에 탄생했다.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 정부가 ‘개방 경제’ 기조의 성장 정책을 안착시켜 경제 규모를 키워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과정에서 창출된 정부 예산 흑자, 외환 보유고 등 국가 자산을 국부펀드를 통해 적극적으로 굴렸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의 로고. /로이터

13일 국부펀드 연구기관인 글로벌SWF(Global SWF)에 따르면 GIC·테마섹은 세계 6·10위 운용 자산(AuM) 국부펀드로 꼽힐 만큼 성장했다. 이들이 불려둔 싱가포르 보유금(Reserve)은 국가 ‘비밀 무기’(secret weapon)란 별칭을 가질 정도로, 국가 위기마다 톡톡히 기여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영 방송 CNA는 “보유금은 싱가포르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교적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코로나 기간 백신을 빨리 구입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여겨진다”고 보도했다.

GIC는 운용 자산 규모가 769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6위 국부펀드다. 싱가포르 정부 금융자산의 대부분을 운용하고 있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가 의장을, 림초우키앳(Lim Chow Kiat)이 CEO를 맡고 있다.

GIC는 ‘최근 20년간 연평균 실질 수익률’을 자체 집계해 투자 성과를 공개하고 있는데, 지난해 실질 수익률(2004~2023년)은 4.6%를 기록했다. 1년 전 기록(4.2%·2003~2022년)보다 소폭 상승했단 점을 미뤄볼 때 지난해보다 수익성이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GIC는 과거 5년 동안 연간 신규 자본 투입액이 가장 많은 부동의 1위 국부펀드였음에도, 지난해는 199억달러를 투자해 2위(1위 사우디아라비아 PIF·316억달러)로 밀려났다.

GIC의 포트폴리오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우선 미국 투자 비중이 38%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23% ▲유로존 9% ▲일본 6% ▲중동·아프리카·기타 유럽 지역 5% ▲영국 4% ▲라틴 아메리카 4% 순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자산군별로는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34~40%)이 가장 높았고, 나머지는 ▲선진시장 주식(13%) ▲신흥시장 주식(17%) ▲부동산(13%) ▲사모펀드(17%) 등에 배분돼 있다.

한국에는 지난해 초 엔터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2018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한 사례가 있다. 2021년에는 스타벅스인터내셔널이 보유한 스타벅스코리아(에스씨케이컴퍼니) 지분을 약 80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고금리 시기’ 이전인 2022년엔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SFC), 강남구 강남파이낸스센터(GFC),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프라임 오피스(디타워·D Tower) 등 서울 오피스 매물을 쓸어 담은 것으로 유명했던 만큼, 부동산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자로도 알려져 있다.

테마섹(Temasek) 로고. /로이터

싱가포르 국부펀드의 또 다른 한 축인 테마섹은 총자산 2880억달러의 세계 10위 국부펀드다. 싱가포르 국가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문 투자 기관으로, 싱가포르 정부(재무부)가 100%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 지주회사 형태다. 이들은 싱가포르 내 공기업 및 정부 자산 관리 역할 외에도 해외·벤처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수익률이 -5.2%로 부진했지만, 최근 20년간 연평균으로는 9%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인다.

테마섹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국가별로는 자국인 싱가포르에 가장 많은 27%를 투자했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투자가 각각 22%, 21%로 그 뒤를 이었다. 산업별로는 금융 서비스에 대한 투자 비중이 24%로 가장 컸고, 정보통신기술(ICT)과 에너지·운송 분야가 각각 21%, 19%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테마섹은 2010·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셀트리온 그룹에 4000억원을 투자해, 셀트리온홀딩스의 대주주로 올라서기도 했었다. 2018년엔 한국벤처투자와 함께 2억1000만달러 규모 스타트업 투자 펀드를 조성했다. 초기 단계 투자에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이다. 2009년엔 서울반도체, 2000년대 초반에는 하나은행 등에 투자한 이력도 있다.

싱가포르 두 국부펀드의 현재 한국 투자 비중은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때 한국 부동산이나 일부 기업에 꽤 투자했는데, 그때보다는 투자 비중이 많이 작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최근까지 중국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그 재미를 보느라고 한국은 투자 대상에서 밀린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