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식 물가를 잡기 위해 음식점에서도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빗장을 풀고, 식품·외식기업 지원에 4800억원을 쏟는다. 식재료에 대한 할당관세도 늘려 가격 하락에 기대가 쏠리지만, 취재해 보니 자영업자들은 가격을 인하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우선 “코로나19 때보다 더 손님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여파로 내수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지갑을 닫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원금을 풀 때 소비자 가격 인하와 연동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 /뉴스1

◇ 인력부터 원재룟값까지 지원 나선 정부

2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식품·외식 물가안정을 위해 4800억원 규모의 저리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외국인력 1만7000명 음식점업 취업을 허용한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운영비, 원재료, 인건비 등을 낮추기 위한 요소들을 모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외식업체 육성 자금을 명목으로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3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저금리로 지원한다.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대출 수요가 커지자 작년보다 2배 확대했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제분업체 경영안정자금으로는 4500억원을 쏟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대한 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정부가 도울 수 있는 것을 지원하자는 취지”라며 “비용이 안정돼야 판매 가격을 올리지 않는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품 원재료에 대한 할당관세 대상도 지난해 15개 품목에서 올해는 27개 품목으로 확대한다. 특히 세제 혜택이 식품·외식기업에 직접 돌아가 가격 인하 등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당관세 물량 배정 방식을 개선했다. 예를 들어 닭고기는 전체 할당관세 배정 물량의 50%를 식품·외식기업 등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음식점에 외국인 취업을 허용해 인건비 인하도 유도한다. 비전문취업(E-9) 외국인의 음식점업 취업은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후 최초로 허용된 것으로, 올해 4월부터 빗장이 풀린다. 이를 통해 약 1만7000명의 외국인 취업이 예상된다.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놓은 것은 외식 물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 물가 상승률은 6.0%에 달한다. 2022년을 제외하면 1994년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의 한 식당 주류 냉장고에 소주와 맥주 등이 채워져 있다. /뉴스1

◇ 정부 지원책 다각도로 내놔도 자영업자들 ‘비명’

그러나 정부 지원책에도 자영업자들은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 직원을 뽑는다고 해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서울 영등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최모(34)씨는 “코로나19 당시에는 인원 제한이 있어도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라며 “지금은 술값이 오른 영향인지 단체 손님까지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해도 아르바이트생 전체를 외국인으로 고용하면 의사소통으로 인한 민원이 있을 수 있다”라며 “1~2명 정도 외국인을 고용해 한국인보다 인건비를 상대적으로 덜 준다고 해도 가격을 내릴 정도의 인건비 절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요리주점 사장 이모(43)씨는 “손님이 줄어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라라며 “정부가 대출로 당장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식당 가격을 낮추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잘라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30)씨는 “당장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라며 “채소 가격이 언제 오를지 모르고, 업체에서 납품받는 김치가 몇 배 오르는 등 주변 상황이 예측 불가해 가격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지표도 고꾸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비스업 생산 증가 폭은 0.8%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2월(-0.8%) 이후 3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가 인하를 위해 세금을 풀지만, 소비자 가격 인하까지 유도하긴 부족하다고 짚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외식 가격은 경직성이 높아 한 번 오르면 잘 내리지 않는 게 특성”이라며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당장 외식 물가가 더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내리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곳간을 풀기 전 소비자 가격 인하를 약속받은 뒤 지원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할당관세를 15%까지 적용한다고 해도 소비자 가격은 2% 정도 내려간다”라며 “세금으로 지원하면 소비자 가격 인하에 얼마큼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가 꼼꼼하게 점검해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