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약 10개월간의 ‘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마무리 지었다. 공정위는 최근 약 2년 동안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이 가계·기업의 모든 종류의 부동산 담보 대출 과정에서 담보인정비율(LTV) 수준을 공유하고, 그 행위가 담당자들 사이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주요 4대 은행의 특정 담보물에 대한 LTV 수준이 유사하고 또 낮게 형성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대출 금리를 밀어 올리는 효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줄이면 차주가 원하는 금액만큼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생기고, 이것이 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4대 은행의 과징금액을 합치면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특히나 부동산 담보 대출을 통한 이자 수익 등 관련 매출액이 가장 많았던 KB국민은행이 4대 은행 중 가장 많은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건물에 설치된 4대 은행의 현금인출기(ATM). /연합뉴스

◇ 동일 담보물 정보 공유… LTV ‘유사하게’ 또 ‘낮게’ 형성

12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지난 8일 공정위가 발송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일괄 전달 받았다.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2021년 12월 30일 이후 최근까지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LTV 정보를 공유한 정황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정보 교환’ 형태의 담합 행위 적발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이 정의하는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의 유형에 ‘정보를 주고받음으로써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가 새로 추가된 것이 불과 2년 전인 2021년 12월 30일이기 때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그간 경쟁 사업자 사이의 정보교환 행위는 ‘합의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정황 증거 정도로 취급됐고, 법원에서도 정보교환과 관련한 담합 사건에서 사업자 사이 가격 합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입증을 엄격하게 요구했었다”면서 “하지만 (정보교환 행위의 담합 유형 추가로) 정보교환 행위 그 자체만으로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글로벌 스탠다드를 참고한 조치였다. 이 때문에 과거엔 문제가 되지 않았던 행위들이 법 개정 이후엔 위법 행위로 규정될 수 있다. 즉 특정한 LTV 수준으로 통일하자고 짬짜미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정보를 교환한 것만으로 경쟁이 제한됐다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각 은행 담보물 담당자들이 돌아가면서 LTV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 매뉴얼 등으로 후임자에게 이 작업을 인수인계한 정황 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공유한 정보의 수는 7500건에 달한다. 교환된 타행 정보를 참고해, 4대 은행들이 비교적 낮은 수준의 LTV를 적용해 왔다는 것이 문제 삼는 지점이다.

서울 시내 주택담보대출 금리 현수막. /뉴스1

◇ “LTV↓이 대출 금리↑ 야기”… KB국민은행 ‘최다’ 과징금

LTV의 과소 산정은 은행 입장에서 한도와 금리 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담보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모자란 대출 여력은 개인의 신용 상황을 반영해서 대출을 일으켜야 하므로 이자를 더 높게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담보물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추후 대출 미상환 시 경매에 부치더라도 그제야 제값에 팔 수 있으니 대출금 회수에도 유리하단 의견도 있다.

공정위는 정보 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농협은행과 4대 시중은행의 평균 LTV 수준이 상당 부분 차이가 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런 담합 행위의 효과가 공고화하면서, 농협은행과 4대 은행의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고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결국 부동산 담보 대출의 평균 금리를 밀어 올린 측면이 있었다는 문제 인식까지 미친다.

정부와 업계에선 4대 은행 중 가장 큰 규모의 과징금 철퇴를 맞는 곳은 KB국민은행이 될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단순한 부동산 담보 대출 규모뿐만 아니라, 이자 수익 등 관련 매출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봐도 국민은행이 1위로 꼽힌단 것이다. 4대 금융지주의 실제 경영실적보고서를 참고하면, 이자 이익이 많은 은행은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순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4대 은행의 과징금을 모두 합치면 9000억~1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A 은행은 이번 심사 보고서 검토 결과 공정위 과징금 부과 추정액을 1000억원대 중반~2000억원대 중반으로 잡았다. 2022년~2023년 상반기 A 은행의 이자 수익이 4대 은행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해 다시 계산해 보면, 4대 은행의 과징금 총액은 약 9000억원 내외로 계산된다.

B 은행은 관련 매출액의 6.5~10% 정도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로 담합 행위에 대해 매길 수 있는 최대 과징금 비율은 20%다.

이들 은행의 총과징금 규모는 ‘상생 금융’에 버금가는 규모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금융지주 등은 고금리로 ‘이자 상자’를 했다는 비판과 함께 당국의 압박을 받았는데, 이에 차주 이자 환급 등 상생 금융을 각출해야 했다. 4대 금융지주와 기업은행·카카오뱅크 등에서 나온 상생 금융 비용은 1조1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상생 금융에도, 공정위 과징금에도 兆 단위 출연” 은행 부글

은행은 강력히 반발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공정위가 지적한 LTV 정보 교환이라는 게) 단순 업무 차원에서의 정보 공유였을 텐데, 그런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하다”며 “우리는 대출 금리를 무조건 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조달 비용 등을 감안한 NIM(순이자마진)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LTV가 85%인데 60%까지 극적으로 낮추는 은행이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사실 전체적인 은행들의 LTV 숫자 자체가 1~2%포인트(p)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유의미한 차이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은행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도를 넘어섰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을 감내하고, 상생 금융 같은 시혜성 지원 정책에 협조하는 것까지도 이해하겠다”면서도 “이번 공정위 제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은행들도 이번에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은행권 조사를 매듭짓고 1월 초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공정위는 앞으로 한달간 은행들의 반박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런데 심사보고서 본문의 양이 200여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데다 ‘정보 교환’ 담합을 규제한 첫 사례로 은행의 강력 대응이 예고된 만큼, 의견 접수 기간 연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본격적인 전원회의가 열리기까지는 꽤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편 은행권은 이뿐만 아니라 ‘국고채 금리 담합’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받고 있는데, 이는 오는 하반기쯤에야 결론 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사와 증권사도 지난해 금리 담합 행위로 현장 조사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