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새해 첫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태영건설 사태’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금융 시장 불안이 증대되곤 있지만, 여전히 높은 3%대의 물가를 고려할 때 현재의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다만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 가능성도 함께 시사됐다. 이번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추가 인상 필요성’과 관련한 문구가 빠진 점이 이런 기대감을 뒷받침한다. 더 이상의 추가 금리 인상 없이 현 수준을 오랜 기간 유지하다가 금리 인하를 논의할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1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2·4·5·7·8·10·11월에 이어 이번까지 8번 연속 금리를 묶어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은 제공

새해 첫 금통위는 박춘섭 전 위원이 지난해 말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공석이 된 데 따라 6인 체제로 진행됐다. 이번 동결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1년째 요지부동이다. 한은은 지난해 1월 25bp(1bp=0.01%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결정 이후 지금껏 모든 금통위 회의에서 동결 결정을 내렸다.

이날은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기도 하다. 한은 금통위에서도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부동산 PF와 관련한 리스크가 증대됐다”고 언급했다. 부동산 PF 대출 부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원론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이 맞지만, 한은 금통위원들은 해당 사안은 금리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토대로 이번 동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가 역시 금리 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지난해 12월 기록한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은 3.2%였다. 전달에 비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아 충분히 둔화됐다고 판단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 금통위는 의결문을 통해 “국내 물가가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누적된 비용 압력의 파급 영향으로 둔화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이 불확실성도 큰 상황인 만큼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가계대출도 주택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복병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의사록 공개 이후 기준금리 조기 인하 전망이 약화하고 통화 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한은의 관망을 지지하는 요소다.

물가와 금융 안정, 성장 리스크, 가계부채, 미 연준(Fed·연방준비제도) 등 주요국의 통화 정책 운용, 지정학적 리스크 등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아직은 금리를 묶어두고 사태를 지켜봐야 할 때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정서희

한은은 현 상태의 금리 수준을 오랫동안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선 긴축 유지 기간과 관련한 문구가 종전의 ‘상당 기간’에서 ‘충분히 장기간’으로 바뀌었는데, 이달 의결문에서도 ‘충분히 장기간’이란 표현이 유지됐다. 해당 표현에 대해 이창용 총재는 ‘최소 6개월 이상’이 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에 통화 정책 전환 가능성도 함께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열린 직전 금통위까지 1년 가까이 의결문 마지막에 물가·금융·성장·가계부채 등의 흐름을 변수로 들면서 항상 “(이런 요소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라는 문구를 포함했다. 다만 이번 의결문에선 이런 언급이 사라졌다.

만약 한국은행이 더 이상의 추가 인상 없이 상반기까지 이런 흐름을 유지한다면, 한은의 기존 최장 동결 기록이 깨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이 콜 금리 목표제를 도입한 1999년 이후 최장기 동결 기록은 2016년 6월 9일부터 2017년 11월 30일까지 1년5개월21일이다.

한편 이번 기준금리 결정은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12월 29일~1월 4일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0명 중 98%(98명)가 1월 금통위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고 발표했다. 직전 같은 조사 결과(96%)와 비슷하다. 기준금리 25bp 인하 전망은 2%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