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5일(현지시각) 올라야 거리에서 바라본 킹덤센터(오른쪽). 왼쪽에는 르메르디앙 리야드 호텔. /윤희훈 기자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오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리야드 갤러리몰’에서 랜드마크 마천루인 ‘킹덤센터’까지 ‘킹 파드 로드’(Kinf Fahd Rd.)와 ‘올라야 거리’(Olaya St.)를 따라 4㎞를 걸었다.

현대식 쇼핑몰부터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전통시장 형태의 의류 매장, 쉐라톤 리야드와 르메르디앙과 같은 5성급 호텔이 늘어선 이 거리는 서울의 을지로와 비슷한 느낌이다.

입지 상 교통량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지역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교통 체증이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메트로’(지하철) 공사 때문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리야드 시내 교통난 해소와 탄소 배출 저감을 목표로 리야드에 6개 노선의 지하철을 새로 만드는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13년 건설사들과 220억달러(한화 28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2019년 운행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사업이지만 아직도 주요 지역의 역사가 완공되지 못한 상황이다.

2022년 상반기에도 연말이면 공사를 마치고 운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지만 빈말이 돼버렸다. 2024년 1월 현재 사우디 정부와 건설사들은 올해 4월부터는 정상 운행할 것이라고 하지만 확신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킹덤센터로 이동하는 도중에 만난 메트로 승하차장 공사 현장. 2019년 연말 개통을 목표로 했던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는 2023년 연말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했다. /윤희훈 기자

리야드에서 활동하는 복수의 한국 국적 경제인들은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를 중동 사업의 리스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인은 “지하철 사업은 하나, 혹은 2개 정도를 먼저 짓고 필요에 따라 늘려가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라며 “지하철 개통에 따른 교통체증 해소 수준과 신규 개발 사업에 따른 교통 수요 증가 등에 맞춰가며 노선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제인은 “동시에 여러 호선을 지어 시민 편의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1개 노선도 운행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라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행정 업무 혁신, 특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신속한 업무 추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맨 밑단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계획은 창대했지만… 미약해져 버린 대형 프로젝트

홍해와 맞닿은 사우디의 휴양도시 제다에 짓다가 중단된 ‘제다타워’ 역시 중동 리스크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제다타워는 사우디가 추진한 세계 최고(最高) 빌딩 프로젝트다. 지상 168층, 1008m 높이로 최초로 1㎞를 넘어서는 마천루를 만들겠다고 사업을 벌였으나, 70층까지 올리다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는 과정에서 해당 공사를 맡은 빈라덴 그룹의 회장인 바크르 빈라덴이 숙청당하면서 프로젝트가 멈췄다. 최근 제다이코노믹컴퍼니가 제다타워 공사 재개를 위한 입찰 제안서를 주요 건설사들에 보냈으나,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업체들은 입찰에 응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성이 떨어지고,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초고층 빌딩 리스트. 인류 최초의 높이 1㎞가 넘는 건물로 추진했던 제다타워는 당초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2024년 현재까지 공정이 멈춰 있다. /조선DB

옆 나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가 추진한 ‘마스다르시티 프로젝트’도 성공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스다르시티는 지난 2008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탄소 기반 스마트 신도시다. 2030년 완공이 목표다.

아부다비 정부는 200억달러(한화 26조원)를 들여 6㎢ 면적의 도시를 구축해 5만명 인구를 정착시키고, 기업 1500개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16년이 돼가지만 1단계 건설만 간신히 마쳤다. 외신들 사이에선 마스다르시티를 실패한 프로젝트로 간주하면서,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큰 사우디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하철 공사도 장기 지연되는데… ‘네옴 프로젝트’ 괜찮을까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북서부 산간 지역에 스키 등 동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관광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트로제나 프로젝트’나, 홍해 지역에 인공섬을 만들어 물류 허브 및 산업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옥사곤 프로젝트’는 그나마 현실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해의 작은 섬에 초호화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UAE 두바이의 ‘주메이라 프로젝트’가 실현됐다는 점에서 불가능하진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홍해에서 시작해 170㎞를 500m 높이의 모듈 건물을 세워 세계 최대 선형 도시를 만들겠다는 ‘더 라인 프로젝트’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재정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인공 산맥이 만들 생태계 영향, 저층부 일조량 부족에 따른 퇴폐화, 생활권역 높이에 따른 계급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네옴시티’를 쓴 중동 전문가 유태양 작가는 “더 라인 프로젝트에 투입돼야 할 자본금은 적게는 수백조원에서 많게는 1000조원까지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달에 인류를 최초로 보낸 아폴로 프로젝트의 예산(25조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규모다. 아무리 사우디가 풍부한 오일머니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만큼 재력이 있을지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야드에서 만난 한국기업 관계자들은 네옴시티의 현실성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왕정국가인 사우디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발언을 했을 때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우리가 평가하긴 어렵다.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수주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게 대외적으로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전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기 위해 2017년 11월 대숙청을 단행한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의 전경. 빈 살만 왕세자는 당시 이 호텔에 반대 파벌 주요인물 400여명을 구금하고 자산을 동결시켰다. 당시 호텔에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충성 맹세를 한 사람들은 풀려났지만, 일부는 기소되거나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윤희훈 기자

중동은 한국 경제의 밝은 미래를 담보해 줄 ‘요술램프’가 될 수 있을까. 집권자의 국가 개혁 의지와 풍부한 재정, 한국 기업의 능력, 정상외교를 통해 확보한 친선 관계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하지만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앞세운 행정 처리 지연과 이슬람 율법을 기반으로 한 사회 규범은 중동의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와 같은 분쟁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최근 사우디 남쪽에 위치한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로 들어가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서 홍해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후티 반군의 행위는 홍해를 통한 물류를 늘리고, 제다와 옥사곤을 물류 허브로 삼겠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구상과도 충돌하는 만큼 종식 상황에 들어간 사우디-예멘 반군 충돌이 재발할 수도 있다.

유태양 작가는 “지난 수십년간 중동에서 대규모 건설·토목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제2의 중동붐’을 들먹이는 기업이 있었지만, 부도 수표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면서 “네옴시티 등 중동 사업에 대한 기대감은 키울 수 있지만, 시현된 성과 이상으로 과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