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이 종목당 보유액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됐다. 만약 올해 장 마감일인 12월 28일 종가 기준 종목당 주식 30억원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내년 1월 1일 이후 주식 양도분부터는 세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2020년부터 대주주 기준이 10억원 이상으로 낮춰진 탓에 연말만 되면 주식을 매도해 증시가 출렁이는 일이 반복됐다. 이같은 시장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연말 휴장일을 일주일 앞두고 대주주 기준 완화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작년 귀속분 기준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은 7045명, 관련 납부 세수는 2조1000억원 규모였다. 정부는 일부 세수 감소는 불가피하겠지만, 연말 세(稅) 부담 회피를 위해 주식을 처분해 온 관행을 감안하면 대주주 기준을 상향하더라도 세수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 대주주 양도세 기준 10억→50억원으로

기획재정부는 21일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보유 금액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바로 시행해 내년 1월 1일 양도분부터 해당 기준이 적용되도록 하겠단 방침이다. 양도세 대주주 기준은 시행령 사항이라 국회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법상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확정일은 연말인 12월 31일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주식시장 폐장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올해는 30일이 토요일이고 전날인 29일은 휴장해, 28일이 폐장일이 된다. 폐장일인 28일 기준 주주대상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면 26일까지는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국무회의를 닷새 앞두고 양도세 대상 기준 완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극적인 발표로 인한 시장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기재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대상 기준 개정안. /기획재정부 제공

현재 상장주식 양도세는 종목당 일정 지분율(코스피 1%·코스닥 2%·코넥스 4%) 또는 종목당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자에 대해, ▲과세표준 3억원 이하분은 20% ▲3억원 초과분은 25%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분율과 과세표준은 그대로 두고 종목당 보유 금액 기준만 50억원으로 상향한다.

이로써 대주주 기준은 약 10년 전 기준으로 회귀할 전망이다. 대주주 기준은 2000년엔 종목당 100억원으로 시작됐으나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으로 점차 낮아졌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현행 10억원으로 낮아진 기준이 지금까지 유지됐다.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당초 지난해 정부가 이 기준을 ‘1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등의 방안을 추진했으나, 야당이 반대해 철회했다. 정부는 자체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시행령 사안이지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2025년 시행)하는 조건으로 야당의 의견을 수용했다.

정부가 야당과의 합의를 깨고 상장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을 완화한 데 대해 국회 기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한 것은 작년의 여야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라며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은 역대급 세수감소 상황에서 세수 감소를 자처한 이율배반적 행위”라고 반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류성걸 국민의힘 간사와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 “연말 증시 변동성 줄면 전체 투자자에도 혜택”

배병관 기재부 금융세제과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백브리핑에서 “정부가 (지난해 추진했던) 방향 자체는 바뀐 게 없다”면서도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많은 환경이어서 자산간 이동성 문제를 고민해야 했고, 이에 과세 형평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이번 대주주 기준 완화로 연말마다 반복되는 증시 하방 압력 작용도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과장은 “(연말 매도 폭탄으로) 시장 변동성이 늘어나 납세행정비용이 많이 들었다”면서 “이번 완화 조치로 연말 자본시장 변동성이 줄어든다면, 전체 투자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이 대주주 확정일인 12월 28일을 하루 앞두고 코스피 시장에서 1조1331억원어치의 유가증권을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4039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도했다.

양도세 대주주 지정을 회피하기 위한 큰손들의 매도와 대량 매도 발생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우려한 개미들의 매도가 맞물리면서 이른바 ‘매물 폭탄’이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주주 지정 기준이 상향된만큼, 연말 주식 매도세가 안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배병관 과장은 “대주주 기준 완화 발표로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판단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오른쪽)과 배병관 금융세제과장이 2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상장주식 양도세과세대상 기준 조정과 관련하여 출입기자단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 재작년 7045명, 2.1兆 납부 주식 양도세… “변화 미미할 것”

정부는 이번 조치로 세수가 일부 감소하겠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귀속분을 기준으로 상장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충족한 뒤 양도 차익이 발생해 관련 세금을 신고한 인원은 7045명, 이들이 납부한 양도세 규모는 2조1000억원이다.

박금철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양도세 기준 조정에 따른 개인의 투자 행태 변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면서도 “과거 대주주 기준을 완화한 조치가 있을 때마다 개인의 순매수가 있었고, 또 그렇지 않았던 해에는 많이 매도했다는 점을 미뤄 짐작해 볼 때 (양도세 세수가) 적어질 것으로는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배 과장은 “대부분 종목당 보유 금액 혹은 지분율 기준 그 이상을 갖고 있는, 정말 대주주인 이들이 훨씬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구조라서 세수 (감소)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했던 안과 같이 대주주 기준을 추후 재차 ‘1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배 과장은 “추가 상향을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종목 보유액 상향에 맞춰 주식시장별 지분율 기준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장 가능성을 보고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해 오던 투자자들이 대주주 지정에 따른 세부담과 기업 규모에 따른 역차별을 우려해 투자처를 대거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주로 상장하는 코넥스의 경우 보유액이 10억원만 넘어도 지분율 4%를 초과해 대주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1일 오후 1시 기준 코넥스 상장사 129개사 중 지분율 4%가 시가 기준 5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3곳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