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자 물가 상승률 둔화세를 이어 온 우리나라와 미국이 올해 중반 3개월간 ‘반짝’ 반등하고, 이내 다시 둔화하는 모습을 유사하게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앞으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이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쟁 등으로 그간 비용 압력이 누증된 영향이 큰데, 지난해 물가 상승세 억제에 도움이 됐던 ‘전기·가스요금 인상 제한’, ‘유류세 인하 조치’ 등이 추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1일 ‘주요국 물가 상황 비교’란 제목의 경제 전망 참고 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우선 주요국 물가 추이를 살펴보면, 유로 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와 미국·호주 등 주요국은 올해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중순(6월 9.1%) 정점을 찍고 1년간 내려오다가, 지난 7월부터 9월(3.7%)까지 3개월간 0.7%포인트(p) 반등했다. 이어 지난 10월에는 다시 3.2%로 내려왔다. 국제유가 상승, 기저효과 소멸 등이 물가 반등 배경이 됐다.

한국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6.3%) 정점 이후 내림세를 거듭하다가 8월부터 10월(3.8%)까지 3개월 간 1.5%p 올랐는데, 11월부터 다시 낮아질 거로 기대되고 있다. 호주는 지난 9월 5.6%까지 올랐다가 지난 10월에는 다시 4.9%로 내려왔다. 반면 유로 지역은 지난해 10월 정점을 뒤늦게 찍은 뒤 현재까지 반등 없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반짝’ 물가 반등을 경험한 주요국 중 한국의 상승 폭이 유독 컸다. 국내 농산물 가격 급등 때문이다. 한은은 “그간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둔화해 왔으나, 주요국과 달리 반등 시점에 농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10월 상승률이 미국과 유로 지역에 비해 높아졌다”고 했다. 지난 8월 폭우·폭염 등으로 채소·과일 등의 생산이 감소한 영향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유로 지역·호주 등 주요국 소비자물가 흐름. /한국은행 제공

한편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는 각국에서 다소 더디게 둔화되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 근원 물가는 3%대 초반, 주요 선진국은 4%대를 보이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국가별로 다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한은은 “미국은 예상보다 강한 경제 성장세와 타이트한 노동시장 등으로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며 “유로 지역은 공급 충격의 이차 효과 지속, 높은 임금 상승률 등에 따른 서비스 물가의 높은 오름세가 둔화 흐름을 제약한다”고 했다.

한국·미국·유로 지역·호주 등 주요국의 근원물가 흐름. /한국은행 제공

우리나라는 팬데믹·전쟁 등으로 누증된 비용 압력에다가, 올해 중반 이후 추가 공급 충격이 크게 나타나면서 그 파급 영향이 오래 지속될 위험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은은 “하반기 유가·환율·농산물 가격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을 계기로 최근 주류, 여행·숙박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했다.

여기에 지난해 억제된 전기·가스요금, 유류세 인하 등 정부 정책 지원 여파가 올해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한은은 “전기·가스요금은 주요국에 비해 인상 폭이 제한되며 지난해 물가 급등을 완화했지만, 인상 시기가 이연되며 파급 영향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며 “현행 유류세 인하 폭이 축소될 경우에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돼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