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일본은행(BOJ)의 정책 결정이 있었던 10월 말~11월 초를 기점으로 우리 환율 시장에 조그만 지각 변동이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도 원·엔 환율도 약 16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나타내면서다. 원화가 달러와 엔에 대해 동시에 급격한 '절상'(切上·원화 가치 상승)세를 이어가는 양상이다.
7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1297.3원에 마감했다. 하루 낙폭(25.1원)으로는 올해 들어 가장 컸다. 원·달러 환율의 급락세는 지난 2일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2일 14.4원 ▲3일 20.5원 ▲6일 25.1원 등 사흘째 지속되고 있다. 겨우 3거래일 만에 60원이 급락한 것이다.
원·엔 환율도 이상 변동성을 보인다. 같은 날 100엔당 원화 재정환율은 867.38원을 기록했다. 2008년 1월 15일(865.28원) 이후 15년10개월 만에 처음으로 860원대까지 내려온 것이다. 불과 지난 3일 2008년 2월 이후 첫 870원대라는 기록을 쓴 지 1거래일 만이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주저앉는 동시에, 100엔당 원화 가격이 800엔대로 내려온 것은 요즈음 관찰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그간은 '강달러'의 독주로 원·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하면서도, 원·엔 환율은 서서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 美 '기대감'에, 日 '실망감'에 올라간 원화 가치
근래 달러 가치가 떨어진 것은 '연준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주 11월 기준금리 동결 과정에서, 미 연준이 생각보다 '비둘기파'(금리 완화 선호)적이었다는 평가에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 노동부 고용보고서에는 시장의 예상보다 많이 부진한 성적(전월 대비 15만건 증가)이 담기면서 확신을 더했다.
미국의 경제 악화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지고 있다는 전망도 잇따른다. 에릭 놀란드 CME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일 '2023년 하반기 거시경제 리스크 진단'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2분기부터 2025년 초 사이에 미국에 경기 침체가 찾아올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 가능성 확대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명분으로 작용한다.
이에 6개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5일(현지 시각) 기준 105대를 기록해, 전장(106대)보다 하락한 수치를 보였다.
한편 미국 달러 가치의 하락이 미 연준에 대한 '기대감'이었다면, 일본 엔화 가치의 하락은 BOJ 정책회의 결과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31일 BOJ가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일부 조정하긴 했지만, 'YCC 정책의 폐지' 정도를 기대했던 시장의 기대엔 못 미치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최근 발언을 통해서도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한다"는 뜻을 강조해 가고 있다.
◇ 韓 경제 호재 없는 원화 절상, 기조로 보긴 어려워
다만 시장 관계자들은 이런 재료들을 고려할 때 달러·엔에 대한 원화의 방향성이 지금과 같이 갈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평가한다. 현재 금리 인하 기조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환율 방향성이 일정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원화 강세 현상이 한국 경제의 '호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 그저 '시장의 과잉 반응' 정도로 보는 것이 알맞다는 의견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 현상은 어느 정도 수용하는 부분이지만, 원과 엔의 관계로 봤을 때 우리 환율이 적정 레벨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800원대는 현재 엔에 비해 원화 가치가 과도하게 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도 "우리나라 원화의 민감도가 커서 생긴 현상"이라며 "미 연준 FOMC 회의 및 BOJ 정책회의에 대한 시장의 과잉 반응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가로 원화 환율이 내릴 명분이 부족하다. 언제든지 또 상승할 수 있다"며 "다만 시장을 움직일 만한 변수나 계기가 없어서 당분간은 이렇게 (원화 강세의) 양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향후 BOJ의 입장 선회에 따라 원·엔 환율이 급격히 널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만약 BOJ에서 드디어 시장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고 긴축 스탠스로 간다면, 엔화 가치가 절상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한번 물꼬가 트이면 그 속도가 굉장히 가파를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