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이 1년간의 긴 침체를 딛고 10월 드디어 일어섰다. 주목할 지점은 이런 성적이 그간 '수출 플러스'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대중(對中)·반도체'의 회복이 아니라, 미국·아세안 그리고 자동차 등 여타 품목의 선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으로의 수출액은 역대 두 번째 규모의 호실적을 달성하며 중국과 비등해지고 있다. 한국 무역 지형의 변화를 보여준 이번 월간 성적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550억9000만달러로 1년 전에 비해 5.1%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수출 감소 흐름을 끊고 13개월 만에 반등했다. 무역수지도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와 무역 흑자 동반 기록은 20개월 만이다.

그래픽=이은현

◇ 미국:중국:아세안=1:1:1 된 수출액… 반도체 다가가는 車

성적표를 좀 더 세세하게 뜯어보면 우리나라 무역 지형의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미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수출액은 100억7700만달러로 1년 전에 비해 17.3% 증가했다. 3개월째 증가세다. 대미 수출액은 역대 두 번째 실적인데,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7월(101억달러) 규모에 버금간다.

우리나라의 1위 수출국 지위를 지켜왔던 중국과도 수출액이 엇비슷해졌다. 지난달 중국 수출액은 9.5% 줄어든 109억9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중국과 미국 수출액은 각각 122억달러, 86억달러로 36억달러가량 차이 났지만, 지금은 불과 9억달러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중국 수출의 감소세가 지속돼 온 반면, 미국 수출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형태를 그리면서 비슷한 규모로 수렴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액도 14.3% 증가해 105억5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미국·중국·아세안으로의 수출 규모는 모두 100억달러 수준으로 비슷해졌다. 미국과 아세안, 두 지역에서의 증가세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한 데 이어, 이번 수출 반등에도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이다.

대중(對中·왼쪽)과 대아세안의 수출액 및 전년 대비 증감률.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품목별로 봐도, 이번 수출 반등에서 반도체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3.1% 감소한 89억40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부진을 겪고 있다. 다만 메모리반도체 수출액이 증가(1%)하며 전체 반도체 수출 낙폭을 꽤나 줄여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간 반도체 수출 증감률은 ▲지난해 4분기 -25.8% ▲올해 1분기 -40% ▲2분기 -34.8% ▲3분기 -22.6% 등이었다.

대신 자동차를 비롯해 일반기계(+10.4%), 석유제품(+18%), 디스플레이(+15.5%), 선박(+101.4%), 가전(+5.8%) 분야가 수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19.8%나 증가한 58억8400만달러를 기록해, 16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를 기록 중이다. 북미를 중심으로 친환경차·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등 차량 수출이 호조세를 띠는 데다, 전기차 수출이 크게 늘었다. 자동차 수출 실적은 10월 기준 역대 1위 기록이다. 1등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의 수출액 차이도 점점 좁혀가고 있다.

월별 반도체(왼쪽)와 자동차 수출액 추이.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中+반도체=수출 호조' 공식 성립 안 했다… 지형 변화 고착 가능성

과거 공식처럼 여겨진 '중국+반도체 호조=수출 증대' 구조가 이번에는 작용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무역 지형 변화가 비단 이번 하반기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며, 향후 고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칩스법'(반도체지원법)으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유도 정책의 성과가 가시화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 증가세는 장기적으로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우리나라 수출의 '다변화 구조'로 가는 긍정적 과정인지, 중국에서 미국으로 장(場)을 옮긴 또 다른 '특정국 의존형'으로의 변화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10월 수출입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정부는 이번 무역 성적의 내용이 우리나라 경기 회복에 있어서 더욱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반도체와 대중 수출 호조가 본격화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이유에서다. 김완기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지난해 수출 감소세의 기저 효과 덕을 본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 반도체와 컴퓨터 시장만 회복이 됐으면, 역대 최대 10월 실적을 기록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현재 상당히 견조한 수출 개선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무역 실적을 기점으로 호조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 실장은 "전체적인 무역수지 흐름은 흑자 기조를 이어갈 거로 보인다"며 "다만 가스·원유 수요가 증가하는 내년 1~2월쯤이 되면, 에너지 가격이 무역수지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