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월 'EU통상현안대책단 출범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급변하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협의에 나서 국내 산업 피해를 최소화했다. 남은 과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노력해달라." (김윤승 법무법인광장 변호사)

24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열린 '통상현안 세미나'에선 강대국의 보호주의와 기후 변화를 앞세운 수출 통제조치 강화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면서 산업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민간 전문가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선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하도록 해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국면에선 상업용차와 친환경차에 대한 세액공제 시행지침을 통해 국내외 반발과 우려를 상당부분 반영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과 관련해선, 산업계와 대응 협의체를 구성하고, 양자협의 등을 통해 우리측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국내 철강 산업이 오히려 재도약할 기회를 잡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서 '최근 미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의 내용과 평가'를 주제로 발표한 정인교 전략물자관리원장은 "한국 기업에 대한 VEU 지정은 한-미 기술동맹의 성과"라며 "반도체 공급망에서 우리 첨단 기업의 역할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는 중국 등 우려국에 대해선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우회수출 등 통제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면서도 "다만 한국 등 동맹국 기업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이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센터장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에 따른 국내 영향은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과 '중국으로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측면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VEU 지정으로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다만 "EUV(극자외선) 장비 반입이 어려워 D램 공정을 하는 SK하이닉스는 해당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피해가 불가피하다"면서 중국에 수출하는 소·부·장 기업 역시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팹리스 분야는 큰 영향이 없다. AI 반도체의 주요 수출 시장도 미국이라는 점에서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IRA 도입 이후 우리산업 영향 분석'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우리 정부가 렌트·리스 등 상업용 친환경차는 북미조립과 배터리 요건 등과 무관하게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관철시켰다"면서 "국내 업계도 리스차 위주로 판매를 늘리며 미국 시장 실적을 방어했다"고 말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이 24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트타워에서 열린 통상현안 세미나에서 미국 IRA가 국내 산업에 미친 영향을 발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와 관련,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올해 미국 시장 내 친환경차 판매규모는 9월까지 8만9000대를 기록 중"이라며 "이미 작년 전체 판매량인 7만4000대를 뛰어 넘었다"며 IRA가 국산차 수출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조 실장은 "오히려 대미 배터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하는 등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중국 배터리 제조사의 미국 진입이 제한돼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뿐더러, 배터리 광물 내재화 및 조달처 다양화로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했다.

'EU의 CBAM 주요 내용 및 전망'을 발표한 김윤승 변호사는 "CBAM 도입으로 역내기업 대비 역외기업이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CBAM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큰 만큼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EU가 CBAM 정책을 빠르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양자 협의 등을 통해 공식적인 '정부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한 점은 높개 평가할 만하다"면서 "우리 측 요구사항인 공정별 배출량 산정 방식이 반영된 점은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홍정의 한국철강협회 실장은 "CBAM 도입이 국내 기업에 부정적인 상황만은 아니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강 수출 경쟁국인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한국의 철강 생산 과정이 투명하고, 각종 부담금을 통해 에너지 관련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이련 요인이 반영된다면 우리에게 불리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병내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그동안 정부는 우방국들과 정상외교를 통해 쌓아온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통상현안에 대응해 왔다"면서 "최근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와 관련해서도 국내 흑연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중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라고 말했다. 양 차관보는 이어 "앞으로도 거세질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파고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공급망산업대화, 한·미·일 산업장관대화, 한-유럽연합(EU) 무역위원회 등 협력 채널을 활용해 국익을 우선시하는 통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