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기조 이후 달러화 가격과 국제유가가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달러화가 오르면 달러화로 표시된 국제유가는 떨어지곤 했는데, 기준금리 인상 이후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이 확산하면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이스라엘·이란전으로 확전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제유가가 더 뛰면 강달러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1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6일 거래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배럴당 1.03달러 하락한 86.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24달러 하락한 89.65달러에 마감했다. 두바이유는 배럴당 2.25달러 오른 9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배경에는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동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주변국까지 가세해 신 중동전쟁으로 커지는 경우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란이 참전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오일 쇼크’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은 주요 산유국인 데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를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만약 이란이 이 해협을 봉쇄하면, 전 세계 원유 수송에 문제가 생긴다. 바닷길이 막히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보유한 예비 산유 능력만으로는 유가 급등을 막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달러화 흐름도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와 달러화 동조 현상은 지난 2022년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달러화 지수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이날 기준 106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화 지수는 주요 6개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낸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비용이 상승한다. 생산자 물가가 오른 만큼 소비자 물가도 오르게 된다. 소비자물가가 오르면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달러화 강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엔 국제유가와 달러화 가치는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미 달러화로 표시된 국제유가는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같은 돈을 주고 더 많은 양의 원유를 살 수 있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미 달러화와 국제유가 사이 동조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에너지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미국의 교역조건이 바뀐 후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강달러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주로 수출하는 품목이 액화천연가스(LNG)여서 이를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 시장 전체에 적용하긴 어렵다.

고유가에 이어 강달러까지 지속되면,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를 수입해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을 추구하던 나라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량의 95%를 수입에 의존해 국제유가 상승에 취약한 구조다. 여기에 미 달러화가 계속 오르면, 원화 표시 수입 가격 상승 폭이 커져 국내 물가도 오르게 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경우, 긴축기조를 장기간 유지해야 하지만, 경기침체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미 달러화와 국제유가 사이 상관관계가 변한 만큼 우리나라도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처럼 강달러 시 국제유가가 하락해 우리나라의 교역조건,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건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며 “대외건전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으로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막는 등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